노령산맥과 차령산맥 사이의 갈비살에 해당하는 기름진 벌판, 미호천 주변에는 예로부터 선인들이 삶의 터전을 삼아 살아온 까닭에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역사의 첫번째 주인공 집단은 역시 뗀석기(타제석기)를 사용하고 채집경제에 나선 구석기 사람들이다.
 1976년 발견되어 1983년 까지 충북대 이융조 교수팀에 의해 발굴조사된 청원 두루봉 동굴을 비롯하여 봉명동, 청원 샘골, 형강, 진사골, 옥산 소로리, 석소동 등 청주·청원지역에서는 구석기 문화유적이 여러 곳에서 조사되어 세인의 큰 관심을 끈 바 있다.
 정식 발굴조사는 안했지만 청원 오창, 초정 등지에서 구석기 사냥돌, 찍개 등이 수습된바 있으며 만수리 어떤 공장에서는 구석기 유물이 파쇄 직전에 발견되기도 했다.
 구석기 유물이 출토되는 지층은 신생대 제4기에 형성된 붉은 색깔을 띤 홍적토(洪積土)이다. 시굴조사에서 홍적토를 절개하여 보면 지층을 따라 토양 쐐기(Soil Wedge)가 형성돼 있는 곳이 많다. 토양 쐐기란 빙기(氷期)에 흙 사이로 스며든 빗물이 얼어 나무 잔뿌리 처럼 쐐기꼴을 형성하고 있는 있는 상태를 말한다.
 제4기에는 4차례의 빙기와 3차례 정도의 간빙기(間氷期)가 있었다. 오래전부터 교차된 빙기와 간빙기 속에서 인류는 석기문화를 일구며 살았고 약 1만년전 부터는 빙기가 물러가고 사람이 살만한 온난한 기후가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홍적토, 충적토 지층의 확인작업은 선사유물 발굴작업의 전제조건이다. 지층이 어떤 이유에 의하여 교란되면 어떤 석기가 나왔다고 해도 신빙성이 떨어진다. 오늘날의 고고학은 지질학, 동생물학, 농학, 자연과학 등 타 분야와 불가피하게 손을 잡을 수 밖에 없다.
 모비우스 교수의 이론에 의하면 동북아에선 주먹도끼가 아닌 이른바 ‘찍개 문화권’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연천 전곡리에서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나오고 단양 금굴에서도 주먹도끼가 나온바 있다.
 서구에서는 한국에 전기 구석기(50만년~12만년)가 없다고 하였는데 최근에 이르러서는 점차 이를 인정하는 추세다.
 청원 두루봉 유적과 단양 금굴, 단양 수양개 유적은 우리나라 구석기 문화 연구에 획을 그을만한 중요한 유적이다. 석회암이 발달되어 뼈 화석이 잘 보존되어 있는데다 남한강, 금강이 소백의 협곡을 흐르고 있어 어느곳 보다 선사 유물이 많다.
 1987년, 일본 후쿠오카 평화태구장(平和台球場) 스탠드를 보수하다 신라와 당나라의 무역기지였던 홍려관(鴻驢館)유적이 발견되었다. 야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일본인들도 이를 포기하고 현장을 보존하였다.
 청주시 율량동 중원특급호텔 공사장에서 구석기 시대의 격지로 보이는 유물이 출토되어 충북도가 공사중지명령을 내렸다. 이곳은 홍적토가 폭넓게 발달되어 구석기 유물의 출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선보존 후개발’의 방식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키워드

#연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