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 내내 이런 저런 세사에 몸도 마음도 피곤하여 주말에는 푹 쉬려 벼르던 참에 25여 년 간 소식이 없던 친구 딸의 결혼식을 알리는 소식에 왠지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친구는 어떻게 변하였을까? 자식은 몇이나 두었을까? 어떻게 지냈을까?
 몇 년 전, 초등학교 졸업 30회 기념 동문회에 나간 적이 있었다.
 친구들이 보고싶다는 말에 남편은 "당신도 나이를 먹는가봐. 친구들이 보고싶다고 하고" 정말 그랬다.
 가정, 직장 쳇바퀴 돌 듯 생활에 열중하다보니 초등학교 친구들의 얼굴이 까마득하였다.
 앨범을 찾았으나 어디에 두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남편은 동문회 장소까지 태워다 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운전을 하는 남편 옆자리에서 내내 친구들의 이름을 생각하고 무슨 말을 할까, 남자친구들에게는 경어를 쓸까 말을 놓을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가득했다.
 어떤 사람이 몇 십 년만에 초등학교 동창회에 나갔는데 약속 장소에서 몇 바퀴를 돌아도 친구들을 찾을 수 없어 되돌아 나오려고 하였더니 방금 전 돌았던 곳에서 어떤 친구가 아무개 아니냐고 하였다더니 그 말이 맞았다.
 어느새 중년도 상 중년이 되어 버린 친구들은 아저씨, 아줌마의 모습으로 섞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너, 누구 아니냐 하면서 시선을 집중하였다.
 나 또한 자신도 모르게 너는 누구고 너는 누구네 하면서 웃었다.
 가장 흉허물없는 친구가 동네친구, 초등학교 친구라고 하더니 살아온 이야기, IMF로 인해 구조조정 대상이 되어 고향으로 내려와 무엇인가를 하고있다는 이야기 등 30여 년이 지났어도 진솔한 이야기들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 뒤 몇 번 동창회 모임에 나갔었지만 이 친구의 소식은 몰랐었는데 갑자기 전화를 받고 보니 반갑기가 그지없었다.
 서울 등 각지에 있는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결혼식이 있는 대전의 모 예식장으로 갔다.
 가슴에 꽃을 달고 분홍빛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친구가 손님을 맞고 있었는데 어쩌면 그리도 고운지.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일 년에 한 번 있는 동창회도 나올 수 없었다며 웃는 친구는 삶의 연륜인 주름조차도 곱게 보였다.
 양가 부모 인사, 신랑 신부 입장, 주례사굞모든 이들이 가득 축복의 박수를 보내고 신랑 신부가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하는데 마치 내 딸을 시집 보내는 양 눈물이 왈칵 솟았다.
 그 친구가 결혼하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저리도 예쁜 딸을 키워 시집을 보내다니 감회도 새로웠다.
 나이 오십이 되어도 고향은 늘 동심 속에 머문다.
 지금도 친정이 고향에 있어 자주 가지만 고향을 생각하면 늘 어릴 적의 풍경이, 추억이 가득하다.
 친구들과 덜 익은 목화송이를 따먹다가 줄행랑을 치던 일, 아버지 자전거 뒤에 매달려 곡식이 자라던 아름다운 들판을 한바퀴 돌던 일, 중학교에 한 명이라도 더 보내려고 한 밤중까지 호롱불을 밝히고 공부를 가르치던 6학년 담임선생님, 장난 끼 어렸던 코흘리개 정다운 아이들.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친구들과 동심 속을 흠뻑 노닐고 있는데 친구 딸이 신혼여행 을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한다.
 고무풍선을 달고 달리는 차가 보이지 않을 때가지 손을 흔들었다. 부디 행복한 삶을 가꾸라고.
 / 시인 홍 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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