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아한 십이율관(十二律管)이 떨며 빚어내는 대금의 청성곡(淸聲曲) 한 자락은 복더위를 저만치 쫓아낸다. 대청마루에서 토담 밖으로 쏟아지는 대금 산조를 듣노라면 무더위를 호령하던 염제(炎帝)도 감동하여 노여움을 풀듯하다.
 달빛 흩어지는 가을 밤에 듣는 이 소리는 더욱 구슬프다. 이어질듯 끊어지고 끊어질듯 이어지는 ‘청성잦은한잎’은 한맺힌 청상(靑孀)의 절규처럼 가슴팍을 파고 든다. 은근과 끈기로 버텨온 배달의 혼을 율관 속에 간직하기 있기 때문일까. 대나무 마디의 아픔이 터져나오며 바람소리, 물소리와 함께 빚어내는 화음은 언제나 애간장을 끊어지게 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상원사 범종에도 대금을 부는 주악상(奏樂像)이 등장한다. 김홍도의 무악도(舞樂圖)나 신윤복의 주유도(舟遊圖)에도 대금이 한껏 흥취를 돋운다.
 일명 ‘젓대’라고도 하는 대금은 중금(中芩), 소금(小芩)과 더불어 신라 삼죽(三竹)으로 불려온 전통 악기다. ‘삼죽’이라 함은 이들 악기가 모두 대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대나무중에서도 검은 대나무 오죽(烏竹), 누런 대나무 황죽(黃竹), 살이 두껍고 단단한 쌍골죽(雙骨竹)이 많이 쓰인다.
 쌍골죽은 정상적인 대나무가 아니라 병든 대나무다. 단단한데다 잘 터지지 않으므로 젓대를 만드는데는 제격이다. 제살을 깎는 진주조개나 담석증에 걸린 소처럼 이 소리를 내기위해 마디가 병이 들도록 맺혀있는 것이다.
 젓대로서 최고의 명품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다. 신라 31대 신문왕이 682년 5월에 바다 용으로 부터 선물받은 대나무다. 동해에 거북머리를 닮은 작은 산이 떠서 감은사(感恩寺)로 오고 있었다. 그 산위에 대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낮이면 둘이 되었고 밤이면 하나가 되었다.
 이 대나무를 베어 젓대를 만들어 부니 적병과 질병이 물러가고 가뭄에는 단비가 내리며 세상 온갖 시름을 덜게했다. ‘만파식적’이라는 젓대 이름은 이렇게 붙여진 것이다. 바다 용은 다름아닌 문무왕의 분신이고 그곳에 해중릉인 ‘대왕암’이 있으니 죽어서도 동해바다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이 현신하여 젓대로나라를 도운 것이다.
 단소(短簫)는 대금이 축약된 형태다. 일설에는 중국으로부터 조선 후기에 들여온 악기라고 하나 그 근원이 확실치 않다. 4천년전 황제(黃帝) 헌원(軒轅)때에 기백(岐伯)이 만든 것으로 조선 순조때에 청나라에서 들여왔다는 설이 있다.
 대금류의 악기이나 대금이 가로로 부는 횡저인데 비해 단소는 세로로 부는 점이 우선 다르다. 단소는 대금처럼 떠림판이 없다. U자형의 취구(吹口)에 혀와 입술로 소리를 낸다. 초보자라면 단소 소리를 내는 데에도 족히 일주일이 걸린다. 들숨과 날숨을 잘 골라서 불어야 대나무 율관이 작동한다.
 제천의 김성수옹은 아흔을 바라보는 고령에도 단소를 불고 후학들에게 이를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단소를 불면 단전호흡을 하기때문에 소화·호흡기관이 튼튼해 진다. 즐거움을 추구하며 건강도 돌보게 되니 가히 일석이조의 악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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