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鳳凰)을 보잤드니/ 어이타 봉황은 꿈이었나…'' 흘러간 노래 ''벽오동 심은 뜻은'' 노랫말의 일절이다.
 노랫말에서 보듯 상상속의 새인 봉황은 오동나무에서 산다. 봉(鳳)은 수컷이고 황(凰)은 암컷이다. 봉황은 대나무 열매를 먹고 예천(醴川)을 마시며 오색의 깃털과 다섯 가지의 소리를 낸다.
 민요 ''새 타령''을 보자 ''새가 날아든다. 온갖 잡새가 날아든다/ 새 중에는 봉황새 만수문전에 풍년새…''세상에는 수와 종류를 헤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새가 있는데 새중의 왕은 역시 봉황이다.
 그러기에 봉황은 용과 더불어 최고의 지위를 의미하는 상징적 용어가 되었다. 중국에서 봉황의 의미가 등장한 것은 후한(後漢)시대부터다. 천자(天子)가 사는 궁궐을 봉궐(鳳闕)이라 하고 천자의 수레를 봉거(鳳車)라 했다.
 중국의 고도 장안(長安)을 봉성(鳳城), 궁중 연못을 봉지(鳳池), 높은 벼슬을 봉경(鳳卿), 아름다운 누각을 봉루(鳳樓)라 했다.
 봉황무늬는 궁궐에서 부터 등장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둥근 고리가 달린 긴칼(환두대도)을 보면 손잡이 부분에 용무늬, 거북무늬와 더불어 봉황무늬가 상감기법으로 새겨져 있다.
 평남 용강의 쌍용총 벽화 천장 제2단 굄돌에는 봉황무늬가 구름무늬와 함께 장식되어 있다. 명(明)의 영락제가 세우고 청(淸)의 건륭제가 개축한 북경의 천단(天壇) 천장에는 금용(金龍)과 옥봉(玉鳳)이 어울려 논다.
 적의(翟衣)는 나라의 중요 행사가 있을때 왕비와 왕세자비가 입었던 대례복(大禮服)이다. 이때 왕비는 용무늬 옷을, 왕세자비는 봉황무늬 옷을 입었다.
 광무 9년(1905)에 발행된 5전 백동화에는 봉황무늬가 있다. 노태우 전대통령의 영부인 김옥숙여사는 한국도자기에서 주문생산한 파란색의 봉황문 식기를 선호하였다.
 봉황은 상상속의 동물인 만큼 여러 동물을 합성해 놓은것 같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의하면 봉황의 머리 앞쪽은 숫 기린, 뒷쪽은 사슴, 턱은 제비, 부리는 닭, 목은 뱀, 꽁지는 물고기 같다고 했다.
 민요에서 보듯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봉황은 궁궐뿐만 아니라 우리네 일상생활 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본래 의미는 최고 지위를 상징하는 것이므로 이 무늬를 마구 사용하는 타당치 않다.
 오늘날 상패나 명패 등에 봉황문(鳳凰文)이 남발되고 있는데 이를 사용치 말라는 법적 근거는 없으나 역사적 맥락이나 동양의 정서로 볼때 자제하는 것이 옳다.
 최근 양길승 전 청와대 제2부속실장의 술자리 몰래카메라와 관련 봉황무늬 베갯잎 진위논쟁이 일고 있다. 국화향 베개를 제작 판매한 청원 낭성의 신모씨는 미리 준비해온 9개의 베갯잎 중 2개에는 봉황무늬가 새겨져 있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청와대는 문제의 베개를 공개하며 베갯잎 사각부분에 국화무늬가 새겨져 있을뿐 금색 봉황무늬는 없다는 것이다.
 봉황의 뜻을 짐짓 알았더라면 이같은 소동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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