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을 찍어낸 운천동의 흥덕사지(사적 제315호)는 역사의 비밀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옛 절터다. 절의 창건은 9세기 중엽, 통일신라 시대이며 고려말에 폐사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곳에는 흥덕사만 있었던게 아니다. 이미 구양사(句陽寺)라는 명문기와가 출토된 바 있어 흥덕사의 전신이거나 다른 절이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흥덕사의 미스터리중 하나는 바로 ‘치미’에 있다. 우리말로 ‘망새’라고도 부르는 치미는 목조건물에서 용마루 끝에 얹는 일종의 장식기와다. 장식과 더불어 길상(吉祥)과 사악한 것을 막는 벽사의 의미가 있다.
 치미는 건물 기와중 가장 큰 장식기와다. 봉황이 날개짓을 하듯 깃털이 좌우 대칭형으로 조성되어 있다.금방이라도 용마루를 박차고 날아갈듯 역동적인 모습이다.
 흥덕사지 남회랑지 양끝에서는 치미 한쌍이 발견되었다. 절터 앞쪽으로 무너져 내려 조각이 난 상태로 쌓여 있던 것으로 보아 절의 화재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한쌍중 1기는 상태가 안좋아 복원을 할 수 없었고 다른 1기는 복원에 성공하여 현재 국립청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고 복제품이 청주고인쇄박물관서 선을 보이고 있다.
 봉황이 갈기를 세우고 있는 이 치미에는 물결무늬와 귀신눈깔무늬가 새겨져 있다. 치미를 만든 수법도 뛰어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치미가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치미중 두번째의 크기를 자랑한다.
 제일 큰 치미는 경주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높이가 1m86cm나 된다. 보통 어른키 보다도 크다.흥덕사지 치미는 1m36cm로 이보다는 작지만 장식기와로서는 엄청난 규모다. 시대적으로는 전형적인 통일신라의 치미다.
 이 치미가 지붕위에 안착되려면 건물 크기가 남대문의 2.4배 정도는 돼야 가능하다. 그러나 흥덕사지에서 출토된 가장 큰 법당인 금당(金堂)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이 치미를 얹기에는 턱도 없이 작은 규모다. 즉 건물과 치미의 비례가 전혀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치미와 현재 복원된 금당은 전혀 별개의 것인가. 이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흥덕사지의 비밀이다. 그런데 최근들어 그 비밀의 한 가닥이 잡히고 있다. 금당과 치미는 동시대의 것이어서 별개로 취급할 수 없다는게 관련학계의 견해다.
 따라서 이 치미의 규모로 볼때 현재 복원된 금당이 단층이 아니라 2층이었을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일부 학계는 조심스럽게 추정하고 있다. 마치 속리산의 대웅전 모양으로 2층형태의 금당이 흥덕사에 존재했던 것이 아니냐는 얘기다.
 1층 금당과 2층 금당은 최소한 치미를 놓고 볼때 큰 차이가 있다. 1층에 얹는 장식기와는 엄청나게 커 보이지만 이 장식기와를 2층에 얹었을 때는 시각적으로 훨씬 작게 보인다는 것이다. 만약 흥덕사지 금당이 2층이었다면 무난히 이 엄청난 치미를 소화했으리라는 추정이다.
 그 웅대한 치미가 과연 2층 용마루에서 존재했던 것일까. 천년의 의문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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