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지구에 등장한 이래 최초의 공예품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사냥이나 요리하는데 필요한 주먹도끼,찌르개, 자르개, 뚜르개, 긁개 등이 먼저 나왔겠지만 옷을 만들어 입고 다른 공예품을 만든 도구는 아마도 뼈바늘(骨針)인듯 싶다.
 뼈바늘은 대개 상아나 새의 다리뼈를 갈아 만들었고 바늘귀까지 정교하게 뚫었다. 우리나라 구석기 유적에서 뼈바늘이 출토된 예는 아직 없으나 중국, 유럽의 여러 구석기 유적에서는 뼈바늘이 여러 점 출토되었다.
 요동반도에 있는 해성(海城) 소고산(小孤山) 구석기 유적(4만년전)에서는 3점의 뼈바늘이 출토된 바 있다. 바늘대는 매끄럽고 상아 백색이며 광택이 난다. 길이 77.4mm의 바늘대는 약간 휘어져 있다. 바늘 귀는 바늘대를 납작하게 간 후, 양쪽에서 맞뚫은 형식이다. (김명숙, 선사시대 뼈바늘)
 2만년전 구석기 유적인 주구점 산정동에서도 뼈바늘이 1점 출토되었다. 길이 82mm의 이 뼈바늘도 소고산 뼈바늘과 마찬가지로 약간 휘어 있는데 애당초 그렇게 만들었는지 또는 사용중에 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지금도 가죽옷을 지을 때는 휘인 바늘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동물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던 구석기 시대이니 만큼 처음부터 가죽옷 재단에 알맞는 휘임형 바늘을 만든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독일 피터스휄스 유적에서 나온 뼈 바늘은 무려 150개나 된다. 바늘의 형태는 비교적 곧으며 길이가 다양하다. 오늘날 서구의 직선적 사유와 동양의 곡선적 사유는 바늘의 모양에서 보듯 이미 구석기 시대부터 결정되어 유전인자를 타고 역사의 여울을 수만년 지나온 것이다.
 신석기 시대부터는 한반도에서도 뼈 바늘이 많이 등장한다. 평남 궁산 뼈 바늘은 베실까지 붙은 채로 출토되었다. 함북 서포항 유적에서는 뼈 바늘과 함께 바늘통도 나왔다. 바늘통은 짐승의 다리뼈 한쪽 끝을 잘라 만든 것이다.
 함북 나진 초도(草島) 유적에서는 무려 40개의 뼈 바늘이 출토되었다. 길이도 다양하고 모양도 제각각이다. 긴 바늘 짧은 바늘, 가는 바늘 굵은 바늘, 곧은 바늘 휜 바늘 등 용도에 따라 여러가지로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가 오늘날 세공기술이 발달하고 기능올림픽을 제패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역사의 필연이다.
 출토된 바늘 가운데는 미완성품도 있고 부러진 바늘도 있으나 문자기록이 없던 선사시대이므로 조침문(弔針文)같은 것은 없다.
 ''아깝다 바늘이여, 어여쁘다 바늘이여, 너는 미묘한 품질과 특별한 재치를 가졌으니 물중(物中)의 명물이요, 철중(鐵中)의 쟁쟁(錚錚)이라…'' 19세기에 미망인이 되어 바느질로 시름을 달래던 유씨(兪氏)부인이 바늘이 부러지자 이를 슬퍼하여 쓴 ''조침문''은 오늘날에도 명문으로 읽히고 있다.
 이번 청주공예비엔날레는 쓰임(USE)을 주제로 하고 있다. 실로 쓰임은 공예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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