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대륙, 그중에서도 고구려, 발해 왕국이 명멸한 만주 일대에는 배달겨레의 체취가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에 이어진다. 고구려의 수도였던 집안(集安)은 말할 것도 없고 길림성, 요녕성 박물관에는 배달의 역사가 화석으로 굳어 있다.
 농경문화가 열리던 신석기 시대에 만주벌판에는 곰, 독수리, 호랑이를 섬기는 무리가 살았다. 빗살무늬토기 문화권이 곰을 따르는 ‘토테미즘’신앙을 가진데 비해 채색토기 문화권은 ‘용(龍)’을, 인디언은 ‘독수리’를 따르는 ‘애니미즘’을 가진 것이다.
 그래서 배달의 혈맥엔 곰(熊)에 대한 향수가 살아있다. 그 향수는 자그만치 5천년을 이어져 내려온다. 신석기, 청동기 시대에 등장한 단군설화에서 보듯 배달은 곰을 따르는 웅녀(熊女)의 자손이다.
 쑥과 마늘을 먹으며 삼칠일동안 동굴에서 인고를 마친 곰은 드디어 인간으로 변해 환웅(桓雄)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고 참을성 없는 호랑이는 동굴밖으로 뛰쳐 나간다.
 은근과 끈기로 대변되는 우리의 정서는 동굴 속에서 햇빛을 기다리는 곰의 참을성 유전인자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곰처럼 미련하다’ ‘곰같은 여자’ 등의 표현은 토테미즘과 연관된 발상들이다.
 웅녀가 동굴 속에서 참고 기다리는 백일은 ‘백일기도’라는 민속신앙으로 이어지며 3·7일은 여자가 아이를 낳은 후 외부와 접촉을 끊고 몸조리를 하는 기간이다.
 집안현 장천(長川) 1호분 벽화에는 고구려인의 활달한 기개가 넘친다. 남성들은 말을 타고 질주하며 호랑이 사슴 등 야생동물을 향해 힘차게 활시위를 당긴다. 화살을 맞은 맹수들은 포효하며 쓰러지고 한쪽에선 모닥불을 지피고 있다.
 상수리나무 주변에선 여인들이 마음을 졸이고 또다른 곳에서는 윗통을 벗은 남정네가 씨름판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벽화의 왼쪽 아랫부분에는 한 마리의 곰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동면하고 있다.
 사냥꾼들은 곰을 깨우려 들지 않고 더욱이 곰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지 않는다. 오랜 옛날부터 그들의 모태(母胎)이기 때문이다. 장천 1호 고구려 벽화에는 우리의 정서와 곰숭배사상을 암시하는 그림이 숨어 있다.
 곰을 따르는 민족은 우리 말고도 여러 종족이 있다. 퉁구스 달단족이나 핀랜드족도 곰을 숭배하며 일본의 토착민인 아이누족도 산신과 곰이 결혼하여 시조를 낳았다는 설화를 갖고 있다.
 구주대 황목박지(荒木博之) 교수는 ‘한반도의 단군신화가 구주를 통해 일본열도에 상륙, 영언산(英彦山)과 웅야(熊野)에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만주~한반도로 이어지는 곰 문화권은 배달겨레의 빗살무늬토기 문화권이며 중국의 한(漢)은 용을 숭배하는 채색토기 문화권으로 우리와 민족구성, 정서가 다르다.
 우리의 얼이 여전히 숨쉬는 고구려, 발해 문화를 중국은 자기네 문화의 일부로 편입시키고 있다. 말과 글이 다르고 정서가 다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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