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눈]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클립아트 코리아
클립아트 코리아

문방사우(文房四友). '문방'은 서적을 갖추어 놓고 독서를 하거나 글을 쓰는 방, 서재다. '사우'는 종이, 붓, 먹, 벼루 등 지필묵연(紙筆墨硯)을 가리킨다. 서재에 필히 갖추어야 할 4 가지 필기도구다. 선비들이 늘 옆에 두고 사용하니 친구처럼 정이 든다 해 지필묵연을 의인화, '선비의 벗'이라 한 이유다. 참으로 정겨운 표현이다. 먹이 없으면 붓이 소용없고, 종이가 없어도 붓이 쓸모없다. 벼루가 없으면 먹이 필요 없고, 먹이 없으면 벼루도 쓸모없다. 상호작용이 필수 불가결한 4위 일체다. 4명의 벗이 똘똘 뭉칠 수밖에 없다.

선비들은 벼루에 먹을 갈아 만든 먹물에 붓을 돌려가며 적신다. 먹물을 머금은 붓은 조금씩 먹물을 흘리며 흰 종이에 글자를 만든다. 이 글자는 쓴 자의 사상이나 생각이 담겨 있다. 붓은 사심이 없다. 아주 객관적이다. 주관은 글 쓰는 이에 있다. 대부분 그냥 쓰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직접 말로 의사나 생각을 전달하는 데는 시공간적 제약이 따른다. 종이는 이런 제약을 해방시킨 셈이다. 이 필기도구들이 발달하기 전에는 나무, 돌 등으로 만든 꼬챙이로 동물 껍데기나 뼈, 땅바닥이나 바위 등 자연물에 생각이나 사상을 새겼다. 꼬챙이는 쓰는 도구가 되었고, 자연물은 쓰는 자의 사상이나 의사를 기록되는 재료, 종이가 되었다.

붓과 먹, 벼루는 종이 가치를 발현시키는 수단에 불과하다. 붓은 쓰는 자의 의지와 행동에 달려 있어 수동적이다. 반면 종이는 쓰는 자의 사고나 지식 등이 기록되지만 일단 이렇게 되면 쓴 자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종이는 이때부터 능동적인 역할을 한다. 읽을 대상을 모으고 그 내용을 알려준다. 종이는 기록된 다양한 사상이나 쓴 자의 의사, 지식을 전달하거나 보존하는 공개 게시판인 셈이다.

종이 가운데 명실 공히 게시판 역할에 충실한 종이가 있다. 신문지다. 기록된 내용 때문이다. 영어로 종이는 'paper'고, 신문지는 'newspaper'다. 새롭고 다양한 소식이나 정보가 기록된 종이라는 뜻이다. 신문지도 종이지만 별도로 '언론매체'라 부른다. 신문지가 기록된 무언가를 불특정 다수인들에게 전하는 공개 게시판의 위치를 확고히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신문지들이 사태(沙汰)가 난지 오래다. 그만큼 소식이나 정보가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참으로 소식, 정보, 자료, 의사, 지식 등이 풍부하게 실려 있다. 별도 공부 필요 없이 자주 신문지만 읽는다면 반드시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러하지 않다. 왜 그럴까? 신문지에 문제가 있을까?, 펜(붓)에 문제가 있을까?, 펜(붓)을 쥔 자에 문제가 있을까? 모두 아니다. 문제는 먹과 먹물에 문제가 있다. 펜(붓)과 펜(붓)을 쥔 자는 깨끗한 종이에 참신하고 유익한 내용을 기록하려 한다. 그러나 먹도 시원찮고 먹물도 깨끗하지 못하다. 우선 급하니 싸구려 먹을 사용하고 물도 불순물이 많이 들어있다. 먹물 입자가 거칠어 종이에 곱게 먹히지 않고 붓놀림이 유려하지 않아 펜(붓)이 제대로 힘을 받지 못한다. 글은 굴곡지고 투박하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펜은 칼보다 강하다(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영국 작가 에드워드 불워 리턴이 1839년에 발표한 역사극 <Richelieu; Or the Conspiracy>에서 말한 관용적 표현이다. '언론과 언론인은 어떤 권력, 불의, 폭력에 굴하지 않고 해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펜의 힘이 이럴진대 우리 언론은 어떠한가? 많은 언론들이 이러하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 그 이유는 바로 먹과 불순물로 비유되는 사주(社主)들 때문이다. 그들은 여론을 생산하고 전달하고 집약하는 공개 게시판 기능에는 관심 없다. 오로지 '정보력이 곧 권력'이라는 생각에 언론을 정보력 획득의 도구로만 취급하고 있다. 그들은 자의든 타의든 정보력의 시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펜과 잉크(먹물)가 부실하면 좋은 글이 탄생할 수 없다. 많은 신문지 등 언론 사주들이여! 양질의 먹물과 자유로운 소통의 장을 제공해라. 펜에 올곧은 힘이 들어가 옥동자를 낳은 산고의 혼을 싣게 하라. 아고라(Agora) 광장이 없었더라면 그리스 민주주의가 탄생했겠는가?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