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눈] 이재은 충북대 국가위기관리연구소 소장

제천 화재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 찾은 제천 소방 책임자 모습/중부매일 DB
제천 화재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 찾은 제천 소방 책임자 모습/중부매일 DB

우리사회는 지난 50여 년 이상동안 정부주도의 경제성장 제일주의 정책을 펼쳐온 덕분에, 전 세계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경제 발전과 복지 사회로의 진입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금전만능주의와 무사안일주의에 의한 사회적 무책임, 안전 불감증의 만연으로 인한 대형 참사와 안전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이기주의가 만연되어 오다 보니 자신의 편리와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와 공익은 도외시해도 된다는 보이지 않는 제도가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를 깊게 내리게 된 것이다.

심지어 주민의 안전을 지켜주는 정책을 마련하고, 자원을 확보하며, 제도를 정비해야 하는 책임을 지닌 사람들조차도 생명을 지키기 위한 예산과 인력을 배정하는데 소극적이었거나 최소한의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것을 당연시 해왔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만 해도 그렇다. 최소한의 소방 인력이나 장비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적절한 화재 진압이나 재난 대응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문제의 원인이 비단 정치인이나 공무원뿐이겠는가. 제천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 불과 일주일도 되지 않아, 소방차량이 진입을 못해 대형화재 참사로 확대된, 바로 그 장소에서는 참사 당시와 별반 다를 바 없이 불법주차 차량들이 좁은 이면도로에 가득했고, 참사가 발생한 지 100여 일이 지난 시점에서도 역시 똑같은 장소에서 다시 화재가 발생해도 참사로 확대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불법주차의 현장 상황은 여전했다. 차 댈 곳이 없어서 주차할 수밖에 없었다는 차량주인의 당당한 항변은 처연함을 느끼게 한다.

이뿐인가. 찾지 못하는 비상구, 물건이 가득 쌓여있는 비상구, 쇠사슬로 문이 잠겨있는 비상구는 민간 상업시설이나 다중이용시설뿐만 아니라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대형 공공시설에서도 자주 목격할 수 있는 현실이다.

현대 사회가 산업화·도시화, 건물의 고층화·밀집화·지하심층화 및 가스·위험물의 사용 증가 등 안전 환경의 변화에 발맞추어, 소방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특히, 오늘날처럼 도시로 인구가 밀집하고 대형화·복잡화된 건축물에 다수의 인원이 상주하는 상황에서 화재나 재난은 대규모의 인적·물적 피해를 야기하고 소방활동상 장해는 인적·물적 피해의 확대로 곧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130여 명의 사상자를 낸 2015년 1월 10일 경기도 의정부시 오피스텔 화재, 2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2017년 12월 21일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46명의 사상자를 초래한 2018년 1월 26일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사건 등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4월 기준으로 최근 10년간 연평균 4만 4,103건의 화재가 발생하였고, 사망자는 325명, 부상자는 1,856명으로 밝혀졌다. 화재 원인으로는 전기적 요인이 21.7%로 가장 많았고, 담배(15.5%), 기계적 요인(10.4%) 순이었다. 장소별로는 주거시설(16.2%), 산업시설(12.6%), 자동차(11.7%) 순으로 화재 발생 빈도가 높았다. 하지만 10명이상 사망자가 발생한 장소는 다중이용시설(복합건물), 요양병원, 청소년시설 등이 많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재은 충북대학교 국가위기관리연구소 소장
이재은 충북대학교 국가위기관리연구소 소장

최근 대형 인명피해를 가져온 화재 참사의 경우에 나타나는 현상으로는 불법적인 건물 증축, 화재에 취약한 건물 내장재 사용, 건축물 내 스프링클러 등 소방안전시설의 미흡, 부족한 소방인력, 노후화된 무전기로 인한 진압현장에서의 정보 공유 및 전달의 어려움, 그리고 여성·노인 등 재난약자의 대규모 인명피해, 불법 주정차 차량으로 인한 소방차 진입의 어려움과 골든타임 상실, 안전불감증과 무사안일주의 등이 있다. 이러한 현상으로 미루어보면, 참사나 재난은 단순한 원인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고, 다양한 요인들에 의한 복잡성, 연계성이 서로 관계를 맺은 복합적 사고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비상구 폐쇄, 불법주차, 소방시설 차단과 같은 화재취약성을 증가시키는 불법사항에 대한 적발과 단속이 강력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더불어 현장에서 활동하는 소방공무원 인력이 대폭 보강되어야 한다. 소방기본법 상 현장 활동 인력의 적정 인원은 5만 1,714명인데, 이는 법에 정해진 최소 인력요건보다도 1만 9,254명이나 적은 것이 현실이다. 이제 한 달 남짓 남은 지방선거를 기대해본다. 주민의 안전과 지역사회의 안전공동체 조성을 위해 참신하고 새로운 공약들을 개발하고 실천해서 지금보다는 조금 더 안전한 세상이 만들어지는 희망을 다시 한 번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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