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유재풍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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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 사용하던 등산화와 등산스틱을 버렸다. 등산화는 10여 년 전 본격적으로 등산을 시작하기 전부터 사용해 오던 고어텍스 고급제품으로서, 그동안 밑창을 갈아서 사용하던 터였다. 그렇지만 다시 밑창이 떨어지고 발등부분도 내려앉아 불편해, 이제는 보내기로 했다. 스틱 역시 애초 가볍고 값나가는 것으로 구입해서 대부분의 등산때 함께 했다. 지리산 종주도 같이 했고, 설악산, 화학산, 무등산 등 100대 명산을 돌았다. 수 차례 수리를 받았지만, 이제는 이음새가 너무 닳아 더 이상 수리를 요구하는 게 미안해서 버리기로 했다.

오래된 물건에 대한 애착은 누구에게나 있다. 익숙하고 편하기 때문이다. 동종의 다른 물건에 비해 값이 월등 높은 경우 그 애착은 더하다. 나도 그런 이유로 오랫동안 위의 물건들을 사용해 왔다. 때로는 애초부터 오래 사용할 요량으로 아주 비싼 물건을 구입하기도 한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골프 퍼터의 경우, 동종유사의 물건 값보다 서너 배 되는 값진 것을 구입해서 가끔 그립만 교체하면서 사용해 온지 이미 10여년이 지났다. 아직도 별로 닳지도 않고 싫증나지도 않는다. 아마 평생 갈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오래된 것에 대한 애착과 그리움이 더 깊어진다. 어린 시절 살던 고향집 마당과 툇마루, 마을의 느티나무, 옛 친구들과 어머니 품 같은 것들이다. 물건 중에도 오래 가지고 있으면서 손길이 스친 골동품이나 수석, 오랫동안 간직해 온 LP판이나 클래식 CD 등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들이 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삶이나 물건들이 활력을 더하는 자산이 되는 것은, 아마도 오래 보고 매만지고 느껴서 자신의 온기가 스며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때로 오래된 것과 결별해야 할 때도 있다. 익숙한 것에만 매달리다 보면 변화와 발전이 없기 때문이다. '고인 물이 썩는다.'는 말처럼 때로 너무 익숙한 것이 사람을 나태하게 만들어 더 이상의 발전은커 녕 오히려 해가 되기도 한다.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없다. 그런데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괜한 집착과 아쉬움 때문이다. 등산화나 스틱의 경우 다른 등산화가 세 켤레나 있고 다른 스틱이 두 벌이나 더 있는데도 버리지 못한 것은, 닿았던 손길과 세월의 흔적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다.

버리지 못하는 대표적인 것이 책이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면서도 책에 대한 애착이 많았다. 대학 이후는 거의 그 책들을 가지고 다녔다. 대학시절 교과서부터 시집 수백 권과 소설책 등 문학서적을 비롯해, 30~40대에 구입했던 책들 거의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40대에 이르러 변호사 개업 후는 연간 50권 정도의 책을 구입해서 읽다보니,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다. 집의 서재나 이층 마루, 사무실 서가는 물론 책상과 창틀 위에 쌓여 있다.

그렇지만 과감하게 버리지 못해 아내로부터 늘 질책을 받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소설의 경우 종이책 보다 e-book을 구입해서 읽고 있다. 사실 책은 한 번 읽으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시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마치 멋진 여행지를 다녀와서 다시 가고 싶어도 못 가본 여행지 때문에 다시 가기 힘든 것처럼. 그래서 요즘은 요령 있게 살려고 노력중이다. 아내의 잔소리를 견디다 못해 그동안 가지고 있던 책 수백 권을 출석교회에 기증하기도 했다.

유재풍 변호사
유재풍 변호사

오래된 것과의 결별(訣別). 세상에는 부부사이처럼 결별하면 안 될 것도 있지만,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는 법, 소유물과의 관계 또한 다르지 않다. 집착 때문에 삶이 유착되어 있다면 얼른 털어버리는 것이 나을 터, 아무리 안타까워도 때로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버리지 못하면 채울 공간이 없어진다. 내 집이나 사무실의 공간이 한정되어 있는 것처럼 내 마음의 공간도 그렇다. 단순화가 필요하다. 생각도, 말도, 행동도. 소명의 완성을 위해 꼭 필요한 것만 간직하자. 익숙한 것과 결별을 두려워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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