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연의 차 이야기] 26.봉채 속 차(茶) 편지

결혼하는 조카. / 정지연 원장 제공
결혼하는 조카. / 정지연 원장 제공

눈이 부셨네. 가끔씩 자네를 볼 때마다 늘 참신하다고 여겨왔지만 그날은 5월의 신부 그 이상으로 청초하고 아름다웠었네. 축하하듯 비까지 내려주어 싱그러운 잎들이 더 푸르게 빛났었지. 여자로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날 흐르는 눈물의 의미는 진주같이 뽀얗고 투명하게만 느껴졌다네.

자네의 결혼식에 참석하고자 우린 새벽부터 서둘렀네. 나로서는 꽤 중요했던 그날의 강의를 다른 교수한테 부탁하고 가야 하는 피붙이의 도리를 몸소 행하는 날이 되기도 하였지. 고속도로위 젖은 노면을 달리는 축축한 물소리가 오히려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더군. 오랜만에 맛본 일탈이랄까. 휴게소에 내려 우산을 들고 말끔하게 씻겨나간 푸른 산을 보고 있자니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졌네.

삼촌은 자네의 결혼 소식을 듣고부터 지금까지 들떠있다네. 나와의 결혼 전. 자네 두 자매를 자식같이 여겨온 삼촌은 지금도 자네들의 일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네. 자네가 인턴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터질 듯 기뻐하던 삼촌은 한동안 해보처럼벙글거리며 즐거워했다네. 상견례 이후 결혼식장에서 본 신랑의 티 없이 순한 모습에 걱정을 내려놓은 듯한 삼촌의 표정에서 딸자식을 걱정하는 아비의 마음을 나는 읽었다네. 망망대해를 걸어가야 할 우리들의 불투명한 삶에 대한 안위였겠지.

식단에서 내려와 신랑신부가 자네의 부모님께 절하는 순서였네. 큰 절을 한 뒤 엄마와 아빠를 끌어 앉는 자네의 얼굴에 흐르는 진주를 보는 순간 나도 삼촌도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네. 내가 결혼할 때 흘렸던 눈물의 의미와는 또 다른 것이었지. 자네의 눈물은 그동안 자네를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의 울타리를 떠나 살아야 한다는 서글픔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라 생각하네. 자네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니까. 

정지연 원장
정지연 원장

어느 가정이든 불안하고 힘든 굴곡이 있기 마련이지. 특히 자네 부모님들은 형용할 수 없는 고단한 삶을 살아왔네. 그런 자네 아버지의 삶을 너무나 가슴 아프게 지켜본 삼촌이기에 자네들에 대한 애정이 더욱 남달랐다는 생각이 든다네. 그 어렵던 생활고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네를 훌륭한 의사로 키워냈던 어머니의 애고와 사랑을 자네가 모를 리 없을 터. 부모님의 한없는 사랑을 뒤로 한 채 떠나갈 수밖에 없는 숙명 앞에 흘리는 그 눈물은 정말 보석같이 빛이 났다네. 

이제는 한 남자의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야 할 딸들에게 바라는 모든 엄마들의 마음을 '봉채 속 茶씨'에 담아서 대신 전하려 하네. 우리 조상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집갈 때 봉채 속에 茶씨를 넣어주는 지혜가 있었다네. 그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곳에서 깊이 뿌리내리고 잘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과 대대손손 집안을 지켜나갈 아들을 기원하는 의미였지.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매사에 흔들리지 않고 올 곳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라는 차의 본질을 표면화 한 것이었지.

그날, 주례 선생님의 인성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말씀은 비단 자네 둘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극약처방이 아니겠나 싶으이.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인,의,예,지,를 강요하면 고리타분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자네는 의술보다 인술을 중요시 하는 훌륭한 의사가 아닌가. 부디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우선이라 여기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진중한 삶을 중요시하는 아름다운 신부가 되길 바라겠네. / 국제차예절교육원장·다담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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