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유재풍 변호사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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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열린세상 유재풍] 라이온스클럽을 통해 막역한 사이가 된 고교후배 가족의 초청으로 마닐라 근처 따가이따이에 아내와 함께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따가이따이는 6년 전 그 곳 라이온스클럽과 함께 의료봉사활동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서너 차례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 후배가 자기 집처럼 사용하는 숙소와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골프장 회원권을 가지고 있으니 함께 시간을 보내자며 초청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중간 하루를 제외하고는 나흘 동안 오전 내내 골프장에서 보내고 오후에는 휴식과 독서로 보냈다. 후배는 알만한 이는 모두 아는 로우 싱글 핸디캐퍼다.

그에게서 나흘간 지도 받으면서, 30년 된 내 골프가 형편없이 망가져 있음을 발견했다. 비디오를 찍어보니 창피하기 짝이 없었다. 그의 자상한 가르침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기초적인 것이었지만, 구력만 믿고 그 기본에서 한참 벗어나 우스꽝스런 자세로 골프를 해 온 것이었다. 아는 거 따로 치는 거 따로였다. 창피하고 또 한심했다. 나도 모르는 새 오랫동안 이상한 자세에 길들여져 있어서 쉽게 고쳐지지 않아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해서는 아니 될 자세로 공을 치려다 보니 힘만 들고, 고치려 해도 잘 되지 않으니 답답했다.

30대 초에 골프를 시작했다. 처음 몇 년 간 당시 시중에 나와 있는 골프관련 서적은 한국 일본 미국 할 것 없이 섭렵했고, 비디오도 수없이 시청하고, 가끔 레슨도 받았다. 한창 많이 할 때는 1년에 70회 이상 하고, 이븐 파를 지나 언더 파를 목표로 연습도 열심히 했었다. 그런데 50대 중반이 지나면서 업무상 골프장에 나가는 횟수도 줄어들게 됐다. 최근 몇 년 간은 라이온스 행사 핑계로, 피치 못할 골프모임 서너 개에 연간 20 회 정도만 나가게 됐다. 그러다 보니 흥미도 없어지고 집 앞에 좋은 연습장이 있는데도 도외시 하게 되었다. 그 결과가 이번 휴가기간에 확인된 것이다. 기초가 무너진 한심한 모습으로.

비단 골프만이 아니다. 스키도 마찬가지다. 스키를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한지 20여년이 지나 딴에는 상급자라고 자칭하고 우리나라 스키장을 섭렵한 것은 물론, 일본이나 캐나다의 유명한 스키장도 가끔 찾을 정도로 좋아한다. 그런데 정작 비디오를 찍어보면 기초가 부족해서 제대로 자세가 나오지 않아 창피하다. 내 딴에는 잘 타는 것 같은 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 시즌에 한두 번 강습 받는 것 가지고는 잘못된 자세가 고쳐지지 않는다. 아무리 혼자만 즐기면 된다고 자위한 들 무엇 하랴. 잘못 하면 다른 이들에게 폐해다.

흔히 구력(球歷)으로 골프한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타인과 함께 하는 운동에 그럴 수만은 없다. 기본기가 없거나 기본기가 탄탄했다가도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는 이상해 질 수밖에 없다. 내 직업인 변호사 직무도 마찬가지다. 40년 가까운 법조경력만으로 의뢰인들을 제대로 섬길 수 없다. 한 때 수년 동안 내가 충북에서 가장 많은 사건을 처리했다거나, 국제법이라는 특별한 법률분야 공부를 위해 30년 전 외국유학을 다녀왔다거나, 중요 정부기관의 표준영문계약서를 만들어 준 경력이 있다거나,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더 낫지 않다. 40년 전 배웠던 기본 6법에 대한 기초지식을 잃어버리면 아무 짝에도 소용없다. 그래서 해마다 연초에 기본법 교재를 한 번씩 통독하려 하나, 잘 안 된다. 새로 나온 서적과 판례를 모아놓기만 하고 통독하지 못해, 참고서로만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유재풍 변호사
유재풍 변호사

이래서는 안 된다. 기본에 충실한 자가 오래 잘 할 수 있다. 일찍이 2002 월드컵 축구에서 한국 대표 팀을 세계 4강에 올려놓았던 명장 히딩크 감독도 한국축구의 약점으로 기본기 부족을 간파하고, 수년 동안 기본기와 기초체력에 공을 들여 놀랄만한 성과를 거두지 않았던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다짐했다. 집 앞 골프연습장에 정기적으로 나가 연습하기로. 기본법 교재로 돌아가기로. 자신을 회복시키기로. 이런 교훈을 상기시켜 준 따가이따이 휴가. 초청해주고 가르쳐 주고, 대접해 준 후배 이옥균 사장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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