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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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열린세상 김현진] 나에게 문화는 그저 '예술'과 동일시되는 정도의 관심 밖의 영역이었다. 가까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멀리 있는 느낌. 유명한 화가의 그림 제목을 단번에 떠올린다거나, 즐겨듣는 클래식 음악을 만든 작곡가의 생애쯤은 거뜬히 이야기할 수 있는 지식의 부재를 감추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게 문화는 예술 하는 사람들의 그 무엇,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문화는 '한 사회의 개인이나 인간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산물'로 정의된다. 포털이 소개한 초등학생 수준의 정의는 '문화는 한 사회의 주요한 행동 양식이나 상징구조'고 '예술은 문화의 한 부분으로 예술 활동과 그 성과의 총칭'을 말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사람이 살아가는 생활양식이 전부 문화가 된다.

19세기 서구 문학비평에서 문화는 흔히 인간 사고와 표현의 뛰어난 정수라는 의미로 정의되었다. 여기에는 위대한 문학, 미술, 음악 등에 대한 지식과 실천을 통한 정신적 완성의 추구라는 열망이 담겨 있다. 예컨대 우리가 문화인이라는 용어를 쓸 때 흔히 그것은 뛰어나고 수준 높은 교양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게 되는데 바로 그 문화의 개념이 그것이다. 이런 문화 개념에 기초하여 오랜 동안 비평가들은 최상의 작품을 찾는데 몰두해왔고 문화란 뛰어난 것을 판별하고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예술과 문화를 동일시하는 나의 사고수준은 딱 19세기에 머물러 높은 교양을 가진 문화인이 되지 못했다는 자학과 열등감의 발현이었던 것 같다. 대중문화라면 누구에게 뒤지지 않고 열띤 토론을 이어갈 수 있겠지만 그 외의 다른 문화지식은 쥐꼬리도 못 따라가는지라 글로 쓰기도 부끄럽다. 그래도 왜 우리가 문화를 어렵게 생각하는지, 왜 누리지 못하는지 고민이 들기는 했다.

사회복지사로서 문화를 고민하게 된 것은 욕구와 문제를 가진 대상자 중심의 사회복지가 전체 주민의 삶의 질을 위한 사회보장으로 확대되면서 사회복지 영역에서 문화의 비중이 점점 더 높아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여전히 문화를 향유할 기회가 적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고급스런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것'이 되었다. 그나마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이라도 있는 지역은 좀 낫지만 그 기회마저 얻지 못하는 지역의 사람들은 문화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나 할까?

최근 여러 지역의 지역사회보장계획 수립을 위해 주민들과 만나는 기회가 많아졌고 관련 전문가들과도 매우 깊이 있는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문화 문외한으로서 주민들의 문화에 대한 욕구와 문화를 기획하는 사람들의 생각의 간극이 훨씬 크게 다가왔다. 대체로 내가 만난 지역의 문화기획자들은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아도 관객이 없다'고 하소연하면서 어떻게 사람들을 모아야 할지가 고민이라는데, 정작 주민들은 '지역에 누릴만한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회장님 사모님이 미술을 좋아하면 미술에 수백억 원, 음악을 좋아하면 음악에 수천억 원을 들이는' 이른바 '사모님 신드롬(Chairman's wife syndrome)'이라는 말이 있다. 사모님 신드롬이 회장 사모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나 복지를 기획하고 판을 벌이는 '뭘 좀 아는' 사람들에게도 있는 것이 아닐까. 사회복지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하다는 각종 통계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많은 서비스를 펼쳐 놓지만 실제로 대상자의 선택을 받거나 이용율이 높은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어렵다. 서비스를 공급하는 우리가 '사모님'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좋아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다가 선택을 받지 못해 더 곤란한 상황에 처한 적은 없는지 살펴보자. 내가 원한다고 모두가 원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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