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 교정자문위원

보이스피싱.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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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법조칼럼 권택인] 며칠 전 늦은 시간 필자 혼자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통상 업무전화가 올 시간은 이미 훨씬 지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전화가 계속 울려서 어쩔 수 없이 필자가 전화를 당겨서 받았다. 의뢰인이 문자로 의뢰업무 비용 청구문자를 받았는데 비용 상세 사항을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업무에 소요되는 비용 혹은 인지비용 등 법원납입금액이 의뢰인에게 얼마나 청구되는지 잘 알지 못한다. 필자는 대표이기는 하나 업무는 일반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분담하여 담당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답변을 제대로 못하고 머뭇거리자 의뢰인은 까다로운 어조로 비용청구 담당직원의 휴대폰 번호를 알려달라고 요청하였다.

사실 가끔 로펌에 슈퍼 갑질을 하는 의뢰인이나 감정 섞인 폭언을 하는 분들이 있다. 하여 늦은 밤에 퇴근한 직원의 개인 전화번호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대표가 할 짓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필자가 직접 확인하고 다시 연락을 하겠다고 약속한 후에 전화를 일단 끊었다.

비용 내역을 확인하고 의뢰인에게 회신을 하는데 놀라운 답변이 돌아왔다. 실은 우리 법인에서 보낸 문자 안내가 보이스 피싱일 수 있다고 생각되어 이를 확인하고자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그럴 만했다. 필자의 주저하는 답변이 그의 의심을 증폭시킬 수도 있는 사회분위기가 아닌가. 하지만 그 분이 간과한 부분이 있다. 보이스 피싱 범죄자 집단은 필자처럼 어리숙하지 않고 범행대상의 의심을 풀 수 있을 만큼 자연스런 연기를 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보이스 피싱으로 보이는 문자를 종종 받고 있다. 특히 몇 해 전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카드사 정보유출 사건 이후에는 그 빈도가 잦아져서 이제 그런 문자에 무덤덤해지기까지 하다. 전화로 싼 이자에 목돈을 빌려주겠다는 전화, 경찰이라고 하면서 필자의 금융계좌가 범죄에 연루된 정황이 드러났으니 출두하라며 험악하게 걸려오는 전화, 우체국이라면서 필자를 수신자로 한 귀중품이 배송되어 와서 보관하는데 확인이 안되면 국고에 귀속된다면서 필자의 금융관련 정보를 빼내려는 전화 등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하고, 몸에 밴 몹쓸 친절함 때문에 긴장을 하면서 적당히 응대하다가 적절한 이유를 찾아 끊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게 받자마자 끊어버리거나, 가끔 짜증이 머리끝까지 차올랐을 때에는 욕을 한바가지 해준 뒤에 끊기도 한다. 누가 왜 어떤 경로로 나의 상세 정보를 알고 전화를 하였는지 궁금하지도 않다. 과거에는 보이스 피싱에 멋지게 대처한 필자의 경험을 자랑하면서 술자리 안주거리삼기도 하였지만, 이제 보이스 피싱은 술자리 이야기 거리로도 삼을 수 없는 정도로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보이스 피싱은 공기중에 먼지처럼 자연스럽게 된 것처럼 보인다.

보이스 피싱이 일상화되었다고 하나, 그에 따른 폐해마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보이스 피싱은 강자에게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그 피해자들은 대게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약자들인 경우가 많다. 보이스 피싱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 끝자락에서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피해자들을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망쳐놓는다는 점에서 약자에 대한 독약이나 다름없다. 필자가 법원으로부터 파산관재인으로 선임되어 수십 건의 파산관재업무를 수행하면서 종종 마주치는 파산자들의 히스토리에 보이스 피싱이 종종 등장한다. 형사 재판을 위해 공판정에 갔다가 보이스 피싱에 가담했다가 적발되어 처벌받는 사건이 적지 않다. 우리 일상에 침투한 보이스 피싱의 폐해는 이제 국가적 관점에서 강력하게 다루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한다.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지금은 보이스 피싱에 가담한 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다거나, 그 피해자들의 새출발을 위한 면책프로그램을 가동하는 등의 사후적 조치에 그치고 있는 것 같다. 일상화된 보이스 피싱에 대한 적절한 대처방법을 국민에게 홍보하고, 교묘해지는 보이스 피싱에 대한 사례를 공유한다거나,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보이스 피싱 의심 거래 건에 대한 사전 모니터링 기술이나 필터링 기술을 개발하도록 하는 등의 강력한 보이스 피싱 예방 프로그램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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