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클립아트코리아
/ 클립아트코리아

[중부매일 열린세상 김현진] 이삿날 아침이다. 부산스러울 줄 알았는데 오후 일정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고요하다. 널어놓고 살던 짐을 모두 치우고 나니 새삼 집이 이렇게 넓었던가 싶기도 하고, 왜 그동안 쌓아놓고 살았는지 후회도 된다. 새 집에서는 치워가며 살자고 다짐하지만 곧 간신히 발만 디디고 살 정도의 집으로 변모할 게 눈앞에 선하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세상이 참 편하다고 생각했다. 직접 짐을 정리하고 버리는 일 외에는 인터넷 세상에서 모두 가능했다. 어쩜 이리도 모바일 서비스가 다 되는지 정말 우리나라는 IT 강국이 확실하다. 안방에서 클릭 몇 번으로 물건을 구매하고 가스 이전, 대형 폐기물을 처리, 가전 무상 수거를 예약만 하면 된다. 물론, 주소 이전도 된다. 전화를 걸어도 인터넷으로 연결하면 편하다며 친절히 사이트를 문자로 전송해 준다. 2년 전 지금 살던 집으로 이사할 때만 해도 응답기가 받아서 담당자를 연결해주고는 했었는데 이번엔 전혀 그럴 일이,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쩌면 이게 너무 편하다고 생각이 들다가도 갑자기 2년 전 내 전화를 받아주던 사람들은 아직 일을 하고 있을까 괜한 걱정도 든다.

새로 지어진 아파트로 이사하는 복잡한 과정에서도 사람을 만날 일은 한두 번 뿐이었다. 그것도 꼭 필요해서 직접 찾아갔을 뿐. 이것저것 물어볼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은데 웬만한 건 스마트폰 앱으로 다 가능했다. 열쇠가 오고가는 일 외에 사람들은 스치기만 했고, 나는 모바일 세상에서 필요한 사항을 처리하면 되었다. 물론, 응답도 앱으로 온다. 불필요하게 복잡한 절차를 질색하는 남편은 정말 편하다며 좋다지만 나는 생각이 많았다. 그나마 인터넷 환경이 좋고 스마트폰을 다루는 데 거부감이 없는 우리 세대야 괜찮다지만 내가 그동안 만났던 많은 이웃들은 이런 정보접근성에서 매우 뒤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진보가 사람을 편하게도 하지만, 기술이 사람을 이기는 두려운 시대에 살아가야 할 날들이 걱정인 사람들이 많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러한 웹 접근성, 정보접근성을 확보하지 못한 사람들은 계속 순서가 밀리고 일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지 모른다. 사람들끼리 해결하던 일들을 이제는 인공지능과 해결해야 한다. 알고리즘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웃들은 필요한 것을 처리하기 위해 사람이 아니라 기계와 대화해야 한다. 무엇을 어디에,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 어디에 건의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지내게 될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사회발전과 직결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에 이르는 시대에 살게 되었지만 사회적 불평등은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양극화가 심해지고 정보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기술을 멀리할 일도 아니다. 여전히 우리 현장도 기술의 진보와 적용이 필요한 곳이 많다. 사회복지에서의 정보접근성은 장애인, 노인 등이 신체적, 기술적 조건에 관계없이 정보통신 기기 및 서비스에 용이하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술과 복지의 조화. 덴마크 정부는 2008년 복지기술(Welfare Technology)에 대해 '고령화 및 저출산 등의 사회적 변화로 급증하는 복지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일상생활의 영역에 ICT기술을 접목시켜 생활의 편리를 돕는 복지서비스의 혁신'으로 정의를 내리고 복지비용 증가의 재정부담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복지기술은 건강, 돌봄, 정부 역할, 보조 공학 등으로 국가별로 강조하는 바가 다르다. 어떻든, 복지기술을 단순히 노동 현장의 인력부족 문제를 대체 한다기보다는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계층의 복지 관련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또 다른 노력으로 보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저러나, 오늘 이 힘든 이사는 모바일이 해결을 못 해주니 내 몫이다. 일하자.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