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유재풍 변호사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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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민사법정에 나갔다가, 평소 라이온스클럽 일로 자주 만나는 분이 다른 변호사와 함께 재판을 진행하는 것을 보았다. 그분도 대기하고 있는 나를 보고 눈인사를 했다. 내 차례가 한참 뒤여서 그 분보다 약 20여분 뒤에 재판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더니, 아직도 복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미안해서 왜 안 갔느냐고 했더니, 자기가 진행하고 있는 사건에 많은 사람들이 관여되어 있어서 내게 의뢰하지 못했다면서, 내가 아닌 다른 변호사를 선임해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한 말을 했다. 나는 이해한다는 뜻을 전하고 변호사 대기실로 인도해서 차 한 잔을 대접하고 헤어졌다.

헤어져 돌아오며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 분이 그렇게 미안해 할 일이 전혀 없다. 내게 말하지 않아도 다른 사정이 있는 것을 안다. 그러면서 나는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법률가로서 기억되고 있을까 생각해 봤다. 고향에 돌아와 20년 넘게 '변호사'라는 직함으로 살면서 많은 분들이 찾아 주셔서 잘 쓰임 받았다. 때로는 평소부터 친숙하기에 찾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누군가의 소개로 나를 찾은 분들이다. 그리고 세월이 쌓이다보니 나를 찾았던 분들이 다른 분을 소개하거나 또는 다시 찾아오기도 한다. 최근 어떤 노인은 자신이 오래 전에 내 도움으로 권리를 찾은바 있다며, 그 손자가 관련된 사건을 가지고 찾아오셨다. 어떤 장년의 여자 분은 다른 분 소개로 왔지만, 알고 보니 예전에 그 아들을 도운 일이 있더란다.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지만 과연 내가 저들의 삶에 얼마나 기여한 바 있을까. 살펴보면 내가 다루었던 것들이 모두 잘 되지는 않았다. 그동안 내가 취급했던 사건 중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15% 이상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 그런 것이다. 개중에는 결과가 안 좋아 불편한 감정으로 헤어진 분들도 없지 않다. 때로 좋은 결과를 얻고 나서도 한 일이 뭐냐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음에도 고마워하며 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주위 분들에게 나를 추천하는 분들도 꽤 있다. 개업감사 예배 때 들은 성구대로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 정성을 다하십시오."(골로새서 3:23) 라는 마음으로 섬기려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흔히 세상 살면서 의사, 변호사, 회계사나 세무사, 공무원, 기자 등 전문가 몇은 잘 사귀어 두는 게 좋다는 말을 한다. 내 경우도 분야별로 몇 명이 뇌리에 각인되어 있고 종종 조언과 도움을 청한다. 돌이켜 법률가의 이름으로 살아온 지 얼추 40년 가까이 된 자로서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있을까 생각해 보면 자신이 없다. 나를 잘 아는 고향 분들이나 학교 동기·선후배라고 해서 다 나를 찾는 게 아니다. 이런 저런 단체활동을 같이 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최고 실력의 변호사도 아니오, 최고 신뢰의 변호사도 못되니 당연하다. 그렇다고 주눅들 일도 아니고 서운하지도 않다. 작은 일거리라도 직접 찾아주거나 또는 주위에 추천해 주는 분들이 고마울 뿐이다.

유재풍 변호사
유재풍 변호사

법정에서 만난 그 지인(知人)이 나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게 해 주어서 고맙다. 아무리 친해도 무조건 법률문제를 내게 맡기거나 상의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기대해서도 안 된다. 내가 관여하는 라이온스클럽 윤리강령 제5조도 "우의를 돈독하게 하며, 이를 이용하지 아니한다."라고 하고 있어서, 평소 강연이나 강의 시 많이 강조한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살려고 애써왔다. 오로지 주위 분들의 뇌리에 가장 친근하고 신뢰할 수 있는 법률가로 각인되도록 애써왔으나 아직 멀었다. 12월이다. 한 해 동안 많은 분들의 배려와 응원에 힘입어 여기까지 온 것을 감사하며 고마움을 전한다. 제대로 섬기지 못해 서운한 마음으로 돌아섰을 분들에게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며 더 많은 이들에게 신뢰받는 법률가로 각인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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