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컬쳐디자이너·에세이스트

올 가을 첫 초미세먼지 ‘나쁨’단계를 보인 15일 청주시 오창 일원이 뿌연 미세먼지와 연무 속에 갇혀있다. / 김용수
올 가을 첫 초미세먼지 ‘나쁨’단계를 보인 15일 청주시 오창 일원이 뿌연 미세먼지와 연무 속에 갇혀있다. / 김용수

1년 전 나는 당뇨병으로 쓰러졌다. 혈당수치가 580이었다. 병원에 입원했고 주삿바늘이 실시간으로 온 몸을 후벼댔다. 아프지 말자고 다짐했고, 아프더라도 조금만 아프자며 맹서했건만 이처럼 허무하게 무너질 줄 몰랐다. 내 젊음만은 영원할 줄 알았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동안 청춘을 방기하면 살아온 날들이 후회스러웠다. 병원에서 약을 한 보따리 타가지고 퇴원할 때는 속이 많이 상했다. 약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에 분개했고 앞으로의 건강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부끄럽고 불안했다. 그래서 퇴원하는 날부터 내게 맞는 건강보감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감이 밀려왔다.

그날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했다. 하루에 두 시간씩 물길, 들길, 숲길을 걷고 뛰며 오르내리기를 반복했다. 식생활도 바꿨다. 즐겨 먹던 쌀밥과 국수를 과감하게 줄이고 설탕이 들어간 음식을 멀리했다. 그리고 스트레스 받는 일을 최소화했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면서 새로운 희망을 일구었다. 6개월 만에 혈당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약을 끊었다. 뒤늦게 병원에 가서 이 사실을 고백했다. 의사는 내 의지와 도전에 박수를 보냈다. 혈색도 좋아졌고 삶에 활기가 넘쳐났으며 하는 일도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고민거리가 깊어졌다. 앞으로 얼마나 더 지금처럼 운동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며칠 전 새벽, 동네 뒷산으로 운동 갔다가 화들짝 놀랐다. 삶이 고달프다며 40대 남자가 산 정상 정자에서 자살을 했다. 무서웠고 찜찜했으며 불쾌했다. 왜 하필, 내가 다니는 산에서 소중한 목숨을 끊었을까. 더 이상 이 산을 오르지 않기로 했다.

사실 모든 풍경에는 상처가 깃들어 있다. 자연도 사람도 아픔을 딛지 않고 그 어떤 결실을 기대할 수 없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쏟아지는 별들과 달들과 바람과 흐르는 강물 모두 상처가 깃들어 있기에 아름답다. 지금 당장 고달프다고 삶을 포기하는 어리석음은 죽은 후 저승에서 더 많은 나날을 괴로움에 뒤척일 것이다.

저녁때는 무심천에서 운동을 한다. 계절별로 옷을 갈아입는 풍경이 좋아 탐사여행 수준이다. 그렇지만 요즘은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자동차의 매연과 여기저기서 밀려오는 미세먼지에 버틸 수가 없다. 되레 더 큰 병을 얻을 수 있기에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이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무심천을 오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스크로 무장을 했다.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다. 이 도시에서는 철저하게 익명성만 있을 뿐이다. 머잖아 시민 모두가 방독면을 쓰고 다녀야 할 것이다.

어쩌다가 이 지경일까. 맑고 푸른 도시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다. 황사와 미세먼지가 전국에서 최악이란다. 암을 유발하는 다이옥신 진원지인 소각장도 전국의 20%에 달한다. 맑은 하늘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도시에 물길이 사라진 지는 오래됐고 숲도 구경하기 힘들게 됐다. 도시는 온통 회색빌딩과 아스팔트 도로와 먼지와 쓰레기로 얼룩져 있다. 불법간판, 불법현수막, 불법주정차…. 도시를 다니다보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변광섭 에세이스트
변광섭 에세이스트

이게 사람 사는 곳인가, 사람 잡는 곳인가. 청주인가, 탁주인가. 자살률이 높고, 호흡기질환자가 많고, 각종 질병에 시달려야 하는 도시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느낌이다. 도시의 숲이 많아야 한다. 도시의 샛강이 많아야 한다. 숲과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소각장이나 매연발생 요소를 최소화해야 한다. 다중시설과 공원마다 안전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꿈과 재능을 맘껏 발휘토록 하는 맞춤형 서비스가 필요하다. 그래야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함께 웃는 도시는 그냥 오지 않는다. 도시의 풍경이 맑고 향기로울 때, 시민 모두가 마음껏 희망할 때, 그 희망이 영글어갈 때 가능한 일이다. 위정자들은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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