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동우 YTN 충청취재본부장

청주 성안길을 나선 시민들이 올 겨울 히트상품인 롱패딩으로 추위를 피하고 있다./신동빈
청주 성안길을 나선 시민들이 올 겨울 히트상품인 롱패딩으로 추위를 피하고 있다./신동빈

무척 추운 날 시내버스가 어느 정류장에 정차하자 예닐곱 명의 고등학생들이 승차했다.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옷이 모두 같은 색과 모양이었다. 검은색에다 거의 종아리를 덮을 정도로 긴 윗도리였다. 이른바 롱패딩이었다.

며칠 전 집사람이 롱패딩 세 벌을 사 왔다. 집사람과 아들 그리고 내 것이었다. 입었더니 참 따뜻했다. 동일 브랜드에 검은색이었다. 온 가족이 롱패딩 동시 패션이었다. 롱패딩 구입 기념(?)으로 외식을 했다. 롱패딩을 입고 말이다. 출발 전 아들이 "이게 뭐여, 운동선수들도 아니고. 나 참. 완전 깜장 교복이네. 교복." 이라고 투덜거렸다. 거리 곳곳도 롱패딩 패션은 이어졌다.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학생들 의복이 대부분 롱패딩이었다. 어떤 롱패딩은 바닥에 끌릴 정도로 길었다. 키가 작은 학생들은 훨씬 커 보였다. 일단 보기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

롱패딩은 영어 'Padding'에서 유래됐다. 제대로 된 영어 표기는 'Padded jacket(coat)'다. 우리말로 '누비옷'이다. 솜이나 오리털을 넣어 누비는 방식으로 만든 옷이기 때문이다. 패딩은 엉덩이를 살짝 덮을 정도의 크기다. 이 패딩이 언제부턴가 종아리를 덮을 정도로 길어졌다. 이렇게 길어진 패딩을 '롱패딩'이라 했다. 'Long padded jacket'가 원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롱패딩 유행의 발원지와 때는 올 1월 동계올림픽이 열린 평창이다. 당시 야외 축하공연 때 아이돌 가수들이 무대 뒤에서 체온 유지를 위해 방한복을 입고 공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이 입은 옷이 바로 복숭아뼈까지 덮는 긴 패딩이었다. 청소년들에게는 아이돌 자체 이외 또 다른 볼거리이자 '따라 하기' 좋은 건수였다. 이 때만 해도 이런 긴 패딩은 보편화되어 있지 않았다. 그 이후 하나 둘 도나캐나 옷가게에 찾아들었고 주문량이 폭주했다.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의류업체의 호황은 계속되고 있다.

원래 롱패딩은 유럽 축구 선수들이 출전을 기다리며 벤치에서 입었던 방한복이었다. 제대로 된 명칭은 벤치 파커(Bench Parker)다. 뛰는 선수들이야 움직이니 추위를 견딜 수 있지만 대기선수들은 반팔과 반바지로 추위를 견디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해서 제작된 '무릎까지 덮은 벤치 파커'가 지난 1968년 그래노블 동계올림픽에서 프랑스 알파인 스키팀의 유니폼이 되면서 선수는 물론 일반인들에게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선수들의 방한복이 어찌해서 우리 일반인들에게는 광적으로 유행되고 있는가? 우선 연예인들을 향한 청소년들의 무조건적인 투사심(投射心) 때문이 아닐까? 우상시하는 연예인들이 입었다는데서 가장 큰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만약 연예인들이 각기 다른 옷을 입었더라면 당연히 롱패딩은 유행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선수들이 롱패딩을 입은 것을 보고 청소년들이 롱패딩을 따라 입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개성보다 동질성을 추구하려는 소시민적 안주도 한몫을 했다. 개성을 살리려다 자칫 왕따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사회구조 역시 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질적인 행위나 유행이 아닌 동질적이고 획일적인 유행, 일시적 문화를 원한다. 어찌 보면 맹목적인 동조다. 더 심하게 말하면 부하뇌동이다. 시기심도 천편일률의 롱패딩을 유행시켰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남이 입었으니 나도 입어야 한다. 롱패딩이 체격과 비용 등과 관계없다. 일단 입고 거리 동시 패션쇼에 참여해야 한다. 좀 더 키가 커 보이려는 욕구도 롱패딩 유행을 부추겼다. 여기에 의류업체의 상술도 유행확산을 증폭시켰다.

결정 장애도 롱패딩 유행에 한 변수다. 많은 옷 가운데 무엇을 골라야 잘 어울릴까? 쉽게 선택할 수 없다. 요즘 청소년들은 선택하기를 적극적으로 주저한다. 정답만 선택하는 공부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일까? 공부 이외 결정할 일들은 연예인이나 부모 등 타자(他者)가 결정해 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기 있는 연예인이 입으면 최고 패션이다. 청소년들의 삶이 개성을 살리지 못한 채 집단이나 모방 행동에 묻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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