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눈] 심의보 충북교육학회장·교육학박사

기해년(己亥年) 첫날부터 사건 사고가 잇따른다. 동해 앞바다에서 지진이 나고 서해안에서는 해상사고가 잇따르고, 정치계에서는 폭로전이 한창이고, 체육계에서도 미투가 확산되고 있다. 산불에 살인, 아동학대…, 사건사고를 보면 산해경(山海經)의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일컬음이 무색하다.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난무한다. 오죽하면 '인성교육진흥법'을 제정하였을까?

인성교육, 사람됨의 교육을 법으로 정한 오늘, 우리 사회는 진정 사람사는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가득한가? 우리교육은 그동안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질문과 탐구에는 소홀하였다. 인간이 무엇으로 행복하게 되는지, 무엇이 인간을 고상하게 만들며 또 비참하게 하는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절실한 필요물들이 어떤 것인지 등 인간의 자연과 본성에 관한 질문들을 하지 않아 왔다는 것이다.

사전에는 사람의 됨됨이나 인품을 '사람됨'이라 하였다. 사람됨을 회복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인성교육을 해야 한다. 실제 행할 수 있는 가치교육이 실천되어져야 한다. 말로써가 아니라 나부터 스스로 행동으로 보여줄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람사랑'을 강조해야 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사랑을 잃고 살아가가 때문이다. 자신을 존중하고 부모를 존경하며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사람됨의 교육이 절실하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인간적인 것들을 잃고 산다는 것은 사랑의 상실에 그 원인이 있다. 인도의 '라즈니쉬(Rajneesh Chandra Mohan Jain)도 석상을 예로 들면서 인간은 내부에 감추어진 사랑을 발견해 가야할 존재라고 한다. 석상을 조각하는 조각가의 모습을 보고 구경하던 사람이 묻는다. '당신은 지금 석상을 조각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내게는 당신이 단지 돌을 깎아내고만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자 조각가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나는 석상을 조각하는 것이 아니라, 석상에 붙어있는 불필요한 돌덩이를 제거하고 있을 뿐입니다. 석상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숨겨져 있다가 드러나는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의 인생자체가 발견되어야 할 석상과도 같은 것은 아닐까? 인생의 의미 그 자체도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발견되어야 하는 그런 것이 아닐까? 선에 대한 관심이 일깨워지지 않은 곳에서는 진리에 대한 관심도 지속되기 어렵다. 그래서 동양 고전의 하나인 중용(中庸)에는 '하늘의 명(命) 그 자체가 곧 우리의 본성이요, 본성에 따름을 도(道)라하고, 도를 마름한 것을 교육이라 한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세계에서 한국만큼 과거 교육의 전통으로부터 단절된 교육을 실행하고 있는 나라도 드물다. 오랫동안 유교국가로서 지녀온 위대한 전통들이 오늘의 교육현장에서 전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선인들이 오랜 동안 교육의 참된 목표로 삼았던 '감정의 조절'과 '도덕력의 신장(四端七情論)'이 오늘의 교육에서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하고, '명상'이나 '사제간의 도', '인륜지도' 등이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심의보  충북교육학회장·교육학박사.
심의보 충북교육학회장·교육학박사.

마치 신생국의 졸부처럼, 아니면 망한 집안의 후손들처럼 온갖 좋다는 외국의 이론들은 모두 받아들이고, 모든 좋은 것은 밖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우리가 보물을 가지고 있고, 우리 스스로가 지식을 생산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오늘의 교육이 목표나 방법이나 기초적 원리를 찾아내는데 있어서 전통을 다시 돌아보고 그 전통으로부터 배우는 일이 사람됨의 교육을 실천하는 하나의 좋은 길이 될 것이다.

자기중심적인 개인주의는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는다. 내 것만을 무섭게 따지고, 자기감정 안의 것만을 중히 여긴다. 그러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도 사랑하는 참된 사랑은 우리 내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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