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번 명절 친정집 며느리들은 아이가 아프거나 당직을 서느라 차례 준비를 할 수 없었다. 급한 마음에 친정아버지는 손이 빠른 둘째 딸에게 지원요청을 했고 그 딸은 오전은 친정, 오후는 시댁에서 차례 준비를 해야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애타는 명절을 보낸 아버지는 앞으로 매번 이래야 할 까봐 걱정하신다. 덕분에 명절 연휴 저녁상 앞에서 토론이 이루어졌다. 예상대로 주제는 뿌리 깊은 유교문화와 성평등이었고 급기야 아버지 사후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깊은 이야기가 오갔다.

평소 세상과 사회에 대해 비교적 열린 생각을 하시는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아버지는 장례와 제사문화에 대해서 의외의 입장을 가지고 계셨다. 화장은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며 매장을 원하셨고, 선산에 당신 묏자리도 이미 준비해 놓으셨다. 사후 제사나 차례에 대해서는 '지내주면 좋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리신다. 이번 명절을 겪고 나니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신 것이다.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2011년 매장 문화를 원하는 인구는 17.2%였으나 2017년 10.9%로 감소했다. 반면에 화장을 원하는 인구는 80.4%에서 87.8%로 높아졌고 이 중 화장 후 봉안을 원하는 인구는 44.2%, 화장 후 자연장을 원하는 인구는 43.6%로 나타났다. 그러나 연령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 60세 미만은 전 연령대에서 매장을 원하는 인구가 10% 미만이지만, 60대는 15.1%, 우리 아버지가 속한 70세 이상에서는 27.7%가 매장을 원하고 있었다. 보건복지부의 노인실태조사(2017년)에서도 연령이 높을수록 매장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례 문화 중 매장을 선호하는 것은 유교문화의 영향 등 전통적인 관습에 기인한다. 하지만, 이미 2001년에 전체 국토 면적 중 묘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1%를 넘어섰고 묘지 1기당 면적은 약 50㎡으로 국민 1인당 주거 공간의 3.5배에 이른다. 다행히도 2005년을 기점으로 화장이 매장을 추월하여 화장 문화에 대한 국민 의식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의식의 개선은 우리의 가정과 사회를 유지시키는 데 유교가 크게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대표적인 경로사상도 그 실현 형태가 달라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웃어른으로부터 배우고 익히던 시대는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면서 반대로 윗세대가 배워야 하는 시대로 변했고, 매장하던 장례 문화도 자식들 입장에서 멀리 있는 묘지보다 자주 찾아갈 수 있는 곳에 모실 수 있는 화장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물론, 화장 후 봉안의 또 다른 문제는 친환경적인 수목장, 평장, 잔디장, 화초장, 해양장 등 다양한 장례 문화를 등장시켰다.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공공시설로서의 수목장 등 친환경 장례시설이 부족하여 시설 확충을 하고자 해도 장례문화와 관련 된 시설을 주민들은 '혐오시설'로 인식한다. 주민 반대로 시설 건립이 무산되었거나 여전히 이슈가 되어 갈등 중인 지자체가 많이 있다. 하지만 미룰 수가 없다.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14.8%를 차지하는 고령사회에 접어든 이상 사망자 수도 매년 증가하기 때문이다. 2007년 24만 명이던 사망자는 2017년 28만 명이었으며, 2025년에는 37만 명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장사 수요의 폭증에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버지가 꼭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료를 찾고 글을 썼다. 여전히 엄마의 봉분을 지극정성으로 가꾸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고맙고 아련하지만, 앞으로 아버지의 장례와 이미 매장된 조상들의 묘는 자연장으로 전환해 근교에 모실 수 있도록 허락하시길 바란다. 명절 뿐 아니라 아버지가 그리울 때 나무그늘 아래 쉬면서 그 좋아하시는 소주 한 잔 올릴 수 있도록, 자식들에게 소박한 그리움의 장을 곁에 두도록 해주시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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