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컬처디자이너

1994년, 빌 게이츠가 72페이지의 낡은 노트를 350억 원에 구입했다. 노트의 주인공은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였다. 이 노트에는 지질학,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탐구와 사유의 내용이 촘촘하게 담겨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 1만3천여 페이지에 달하는 노트를 남겼다. 빌 게이츠는 이 노트를 통해 창의적 영감을 얻고자 했다.

연필은 지적광산이고 책은 지식의 최전선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한 사람의 삶을 기록하는 행위다. 시대의 상처와 영광을 오롯이 담는 일이다. 책을 읽는 것은 세상의 지식과 정보와 지혜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며 새로운 미래를 여는 성스러운 의식이다.

얼마 전 열린 희망얼굴 희망학교에서 기타리스트 박종호 선생은 자신의 낡은 책과 찢어진 노트와 일기장을 소개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를 쓰고 기록하는 습관을 길렀는데,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모았던 것 중의 일부였다.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의 지도로 악보에 관심을 갖게 되고, 중학교에 들어가 예쁜 음악선생을 짝사랑하면서 시작된 음악에 대한 애정과 공주사범학교에서는 기타 동아리를 만들고 음악으로 여는 멋진 신세계를 꿈꾸었음을 웅변하는 기록들이었다.

적자생존(適者生存). 환경에 적응하는 생명만이 살아남는다. 그렇지만 그는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며 빛바랜 옛 노트를 꺼내니 함께 한 사람 모두가 추억에 젖을 수밖에. 그간의 삶을 기록하고 기념했기에 애틋하다. 해직교사가 될 때의 쓰라린 상처, 암과의 투병, 시대의 아픔과 희망을 노래하는 기타리스트로서의 일상을 담은 글밭에서 상처 깃든 풍경을 본다.

최근에 나는 '초정리 사람들'이라는 책을 펴내기 위해 고향 초정리를 어슬렁거렸다. 낡고 오래된 이야기를 찾아 나선 것인데 옛 자료 얻기가 쉽지 않았다. 흑백사진 한 장 구하는 것도 힘들었다. 쓰라린 옛 추억을 생각하면 쓸쓸함이 밀려온다며 버리거나 불태웠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랫동안 초정리를 지켜온 몇몇 분들이 그날의 풍경과 추억을 증언해 주었다.

일제는 이곳에 가스공장과 함께 자신들의 관사와 신사를 짓고 약수를 약탈해 갔다. 해방되던 날 동네 사람들은 신사에 불을 지르며 만세를 외쳤다. 세종대왕이 초정에 행궁을 짓고 두 차례에 걸쳐 121일간 요양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각종 자료를 찾아 나선 사람도 있었다. 87세의 최태영 어르신이다. 그는 행궁의 위치가 인근 주왕리라는 주장에 발끈하면서 세종실록과 토지대장 등의 자료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초정약수 주변에 여러 필지의 왕실 땅이 있음을 확인했다.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초정리 일원이 스토리텔링의 보고(寶庫)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한봉수 의병장이 일제와 치열하게 싸웠던 한봉수바위, "초정수에 마음을 씻으니, 사람은 다 평등하더라"고 시를 남긴 의암 손병희, 청주권에서 가장 큰 백중놀이가 열렸던 탕마당 풍경, 일제때 한 일간지에서 욕객을 모집한 자료 등이 빛바랜 노트에서 하나씩 속살을 드러냈다.

무엇보다도 값진 결실은 초정리에는 수 백 년 된 동계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확인시켜준 것은 마을에서 보관해 온 낡은 한 권의 책이었다. 빛바랜 이 책은 주민들이 직접 한지를 묶은 뒤 하나씩 그날의 일들을 기록한 것들이다.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꿈을 빚으며 기쁨과 영광, 아픔과 상처를 보듬어 온 지날 날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우리의 삶을 기록하는 일은 역사의 마디와 마디를 기념하는 일이다. 역사는 기록으로 만들어진다. 지금 이 순간, 삶의 최전선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기념하고 싶다며 기록할 일이다. 먼 훗날 빛바랜 노트 하나가 누군가에게 가슴 뛰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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