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속담이 있다. 숙명을 받아들여 자기 분수에 맞게 처신하여야 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뜻으로 풀이된다. 확률적으로 보면 숙명에 대한 저항은 성공할 가능성이 무척 낮을 터이니 송충이 속담은 수학적으로는 합리적인 견해로 보이긴 한다.

하지만, 송충이 운운하는 대사들이 주로 어떤 상황에서 쓰였는지 돌이켜 보자. 대부분 숙명론적 세계관을 가진 대다수의 사람들이 진취적인 개척자를 향해 내뱉는 말이 아니었던가? 어쩌면 이런 숙명론적 사고에 충실했다면 미국의 애플사는 아직도 MP3플레이어나 만들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고, 구글, 테슬라 같은 IT 대기업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혁신이 가능했던 토대를 설명하는 동화가 있다. '추위를 싫어한 펭귄(The penguin that hated the Cold)'이라는 동화인데, 제목 그대로 추위를 싫어한 '파블로'라는 이름의 펭귄의 이야기이다. 일반적으로 펭귄은 추운 극지방에 서식하는데 이 동화 주인공 파블로는 펭귄의 숙명(?)에 맞지 않게 추위를 싫어한다는 제목부터가 반전이다.

추위를 싫어하는 파블로는 어쩔 수 없이 추운 남극에 살고 있다. 추위를 견뎌야 하는 것은 펭귄의 숙명이다. 하지만 파블로는 불을 지펴 추위를 피하는 등 다른 펭귄과 다른 행복을 꿈꾼다. 결국 파블로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일반적인 펭귄의 본성에 반하는 시도를 한다.

파블로는 펭귄에게 주어진 운명같은 추위를 받아들이며 환경에 대처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추위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아예 남극을 떠나 열대지방으로 가기로 마음먹는다. 개척자 정신 쩌는 파블로는 솔잎을 거부한 송충이가 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파블로의 시도에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난로를 등에 걸치고 스키를 타고 따뜻한 곳을 찾아가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등에 뜨거운 물을 지고 걸어가다가 눈이 녹아 물에 빠져 죽을 뻔하지만, 결국에는 얼음배를 타고 만들어 바다를 건너가다 따뜻한 햇살에 얼음이 녹아 익사할 위기를 거친 끝에 기지를 발휘해서 항해를 계속하여 야자수가 가득한 따뜻한 섬에 이르게 되면서 그의 낭만 가득한 도전은 성공으로 막을 내린다.

어쩔 수 없이 추위 속에서 태어났으나 추위를 싫어하는 파블로처럼 필자도 변호사로서 평생 누군가의 대리인이 되어 싸움을 하고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지만 싸움을 싫어한다. 많은 이들이 싸움으로 먹고사는 변호사가 싸움을 싫어하는 것이 말이 되냐고 반문하는데, 필자가 변호사가 된 까닭도 역설적으로 싸움을 싫어해서이다.

사실 세계를 주름잡는 대형 로펌은 주로 영국계이고 세계속에서 명성을 떨치는 국제변호사는 영국내에서 법정싸움을 하는 변호사(Barrister)들이 아니라 자문으로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고 의뢰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사무변호사(solicitor)들이고 보면 싸움을 싫어하는 변호사가 추위를 싫어하는 펭귄만큼 별종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권택인 변호사
권택인 변호사

소송, 즉 법정 싸움을 의뢰하는 지인에게 필자는 '소송은 이기면 덜 다치고 지면 크게 다치는 일'이라는 것부터 설명을 하고 적극적으로 소송외 화해를 시도한다. 실제로 상호간 덜 다치는 선에서 소송전 사건을 종결하곤 한다. 그런 모습이 어쩌면 필자를 날로 먹는(?) 변호사로 보이게 만들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신속하고 경제적이기까지 한 사건 종결을 위해서는 더 많은 당사자 접촉이 필요하여 재판으로 종결하는 것보다 감정 소모가 많은 편이다.

필자가 싸움을 싫어한다고 해서 싸움을 못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선량한 박사에서 녹색 괴물론 변하기 전의 헐크가 깐족대는 상대방에게 '나를 화나게 하지 마세요'라고 정중히 부탁을 하는 것을 떠올려 보라. 원만한 협의가 되지 않아 박사가 헐크로 변하여 싸움을 하게 되면 상대방은 떡실신되고 헐크 자신은 멀쩡했던 옷이 팬티 한 조각만 남게 되는 손해를 보게 되어 이래저래 양쪽 다 손실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싸움을 싫어한 변호사가 아직은 한국에서 흔한 변호사 유형은 아니다. 하지만 필자는 언젠가 파블로처럼 숙명을 이겨 따뜻함을 쟁취한 펭귄처럼 재평가 받는 날이 오리라 믿고, 오늘도 싸움을 말리고자 동분서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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