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밥상 위에서 눈만 빼곡히 보인다. 투명한 몸에 등줄기만 검은 줄이 있는 어린 멸치. 많은 반찬 중에서 유독 잔멸치가 내 눈에 띄었다. 작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준다.

언젠가 멸치잡이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극한 직업이었다. 따뜻한 해류를 따라 멸치 떼가 올라오면 멸치잡이 배들도 덩달아 바빠진다. 푸르스름한 새벽, 빛이 없는 어둠을 뚫고 바다로 향하는 어부들. 짙푸른 바다를 은빛으로 수놓은 작지만 강한 생선, 멸치다. 멸치를 잡아 그물에서 멸치를 털고 삶아 말리기까지의 긴 과정이 어부들에게 모두 녹록치 않은 작업이다.

어부들이 털고 있는 것은 비단 멸치만이 아닐 터이다. 바다에 바친 찬란했던 젊음과 열정, 바로 인생일 것이다. 거친 파도와 사투하며 혼신의 힘을 다한다. 털리는 비늘처럼 나쁜 일도 같이 떨어져나갔으면 좋겠다.

넓고 넓은 바다에서 떼를 지어 움직이다가 그물에 걸려들었겠다. 파닥파닥 튀어 오르는 은빛물결에 어부는 미소 지으며 멸치를 펄펄 끓는 가마솥에 넣었음이다. 얼마나 몸부림쳤으면 몸이 똑바로 굳지 못하고 다 휘어졌을까. 짭쪼롬한 해풍과 따사로운 햇볕에 말려 꼬들꼬들해진 멸치는 몸의 크기와 상품에 따라 값이 매겨진다. 뜨거움에 두 눈을 부릅뜬 채로 말려져 지금 밥상에서 내 눈과 마주쳤다. 바다의 물결은 뼈에 남아 멸치의 등에 검은색 줄로 그러져있다.

어쩌다보니 상 위에 멸치 반찬이 세 가지나 된다. 큰 멸치는 꽈리고추를 넣어 볶았고, 중 멸치는 각종 견과류를 넣어 고추장으로 맛을 냈고, 지리멸치는 들기름에 넣고 볶다가 깨소금과 잣을 넣었다. 사실 아들은 멸치반찬을 잘 먹는 편이 아니라서 한 숟가락만 먹으라고 밥상머리에서 늘 한 소리한다. 마지못해 아들 젓가락에 딸려 온 멸치는 바람과 햇빛에 물기를 빨리고 뻣뻣해진 멸치 몇 마리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멸치를 먹어서 내 몸에 피와 살이 되었을까. 내 몸속에서 멸치 떼가 헤엄을 칠 것 같다. 멸치는 가장 많이 먹는 청어목생선으로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지만 밥상에선 언제나 조연이다. 국물 맛을 내 주는데 멸치만한 것이 있을까. 머리부터 꼬리까지 통째로 우려져도 식탁에 오르지는 못한다. 잔치국수나 냉면, 된장국에서 멸치를 본 적이 있던가. 국물 맛을 내는 소임을 다하고 건져졌음이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멸치는 척추동물에 속한다. 몸집은 작아도 뼈대가 있는 동물이다. 생명이 넘쳐나는 바다 생태계에서 어쩌면 먹이사슬의 제일 아래에 있을 멸치. 다른 어류에게 잡아 먹혀도 자신은 잡아먹을 고기가 없어 동물 플랑크톤을 먹고 산다. 한 마리의 멸치는 작고 왜소하지만, 바다 속을 유영하는 멸치 떼는 힘이 있고 역동적이다. 푸른 바다를 헤엄치던 생생한 목숨을 가마솥에 넣어 끓는 물에 삶고, 햇볕에 말리어 수분을 날려버려 더 이상 오그라들 것도 없는 몸을 또 다시 끓여 국물을 낸 뒤에야 생을 마친다.

끓는 물속에서 물의 방향 따라 위로 아래로 둥둥 움직이는 멸치를 보다가 난 누군가에게 이렇게 아낌없이 온 몸을 내던져 준적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니 마음이라도 통째로 준 적이 있었던가.

크기는 작지만 어부들에게 풍어의 기쁨을 그리고 식탁엔 풍성함을 선사하는 바다의 작은 거인 멸치. 한생을 다하고 밥상위에 놓여있는 고 작은 멸치가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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