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매일 박성진 기자] 1994년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잔인하게 살해한 이춘재씨(56)가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드러났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우리나라 범죄 사상 최악의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씨의 DNA가 이 사건 중 3차례 사건의 증거물에서 채취한 DNA와 일치한다고 19일 밝혔다.

이씨의 DNA가 검출된 사건은 5·7·9차로 알려졌다. 9차 사건에서는 피해 여성의 속옷에서 이씨의 DNA가 나왔다. 이씨는 경찰의 추궁에도 혐의 일체를 부인하고 있다.

▶용의자 DNA 검출된 5·7·9차 사건 '판박이'=5차 사건은 1차 사건이 발생한 이듬해인 1987년 1월 10일 오후 8시50분 경기도 화성 태안읍 황계리 논바닥에서 H(18)양이 살해된 채 발견됐다. H양은 블라우스로 손이 묶이고 양말로 재갈이 물린 상태였다. 경찰은 H양이 성폭행당한 뒤 스카프로 목이 졸려 숨진 것으로 추정했다.

7차 사건은 1988년 9월 7일 오후 9시30분 화성 팔탄면 가재리 농수로에서 성폭행당한 뒤 살해된 A(52)씨의 시신이 발견됐다.A씨 역시 블라우스로 양손이 결박됐고, 양말과 손수건으로 재갈이 물린 상태였다. A씨의 특정 부위가가 훼손된 상태였다.

9차 사건은 1990년 11월 15일 오후 6시30분 화성 태안읍 병점5리 야산에서 K(13)양이 성폭행당한 뒤 목 졸려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K양 또한 스타킹으로 결박되고, 특정 부위 훼손 피해를 봤다.

▶가출한 아내에 대한 보복으로 처제 강간살해… 무기징역으로 25년째 수감=이씨는 25년 전 자신의 처제(당시 20세)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5년째 복역하고 있다.

범행 당시 31세였던 이씨는 1994년 1월 13일 오후 7시께 충북 청주시 복대동 자신의 집에 놀러온 처제(당시 20세)를 성폭행한 뒤 둔기로 머리를 때리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씨는 범행을 감추기 위해 부엌에 있던 비닐봉지와 청바지로 피를 흘리는 처제의 머리를 씌운 뒤 스타킹과 허리띠로 손과 목을 묶어 사체를 방석카바에 넣어 현관에 있던 유모차에 싣고 집에서 1km 가량 떨어진 철물점 PVC자재 적재장소에 유기했다.

이씨는 1993년 12월 가정불화로 아내가 2살짜리 아들을 남겨놓고 가출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잔혹하게 살해된 처제가 당시 차고 있던 손목시계는 깨어진 채 오후 7시25분에 멈춰있었다.

처제는 대성여상(女商)을 나와 청주대에서 임시직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형부에게 무참히 살해된 것이다. 이씨는 1·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은 계획적인 범행이 아닌 우발 범행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대전고법으로 사건을 되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이씨에 대해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가석방 노렸나… 1급 모범수로 혼거실 생활=이씨는 교도소에서 모범적인 수용생활로 1급 모범수로 분류됐다.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된 1995년 10월23일부터 부산교도소에서만 24년째 복역하고 있는 이씨는 다른 수용자들과 혼거실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씨는 복역 중에 문제를 일으킨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무기징역이 아니었다면 1급 모범수였기 때문에 가석방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 면회가 허용된 이후에는 이씨에게는 1년에 한두 번 가족과 지인이 면회를 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년 9월 15일부터 1991년 4월 3일까지 경기도 화성시 일대에서 10명의 부녀자들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희대의 살인사건이다.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동원된 경찰 연인원만 205만여명으로 단일사건 가운데 최다였다. 수사대상자 2만1천280명, 지문대조 4만116명 등 각종 수사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이형호군 유괴사건'과 함께 국내 3대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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