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눈] 김동우 YTN 충청본부장

오색단풍이 처내려온다. 마치 적이 산 정상에서 아래로 공격해오는 모습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산은 아래로 물들기 시작한다. 정말 보기 좋은 풍광이다. 사람들은 흥분하며 설렌다. 하지만 돈 한 푼 받지 않고 인간들의 눈요기를 실컷 시켜준 뒤 곧바로 낙엽이 되어 단풍의 생을 마감한다. 왜 보란 듯이 화사함으로 둔갑한 잎이 보다 더 지속하지 못한 채 낙엽이 되는가? 무임승차하는 인간들이 꼴 보기 싫어서 일까? 아니면 자연의 섭리에 적응해야만 해서 일까? 인지능력이 없는 나무가 인간들에게 뭔 감정이 있다고 그렇게 빨리 단풍을 포기하겠는가? 당연히 자연의 순리 때문이지.

낙엽이 지면 나무는 이른바 나목(裸木), 앙상한 가지를 보여 준다. 자태(姿態) 유지는 그 자태를 위해 겪어야 하는 인고(忍苦)의 시간과 강도에 비하면 너무 짧다. 그 낙엽은 바람에 쓸쓸히 이러 저리 뒹굴다가 결국 어느 곳에서 스스로든, 강제적이든 분해되지만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토양이 된다. 죽지만 죽지 않고 또 다른 생명으로 환생하는 셈이다. 자신이 분해되는 아픔은 산고(産苦)다. 분해는 자신은 물론 다른 식물을 위한 희생이다.

원래 낙엽이 지는 이유는 겨우내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서다. 겨울에는 뿌리로의 수분 흡수력이 크게 떨어지는 데다 탄소동화작용으로 수분이 휘발되면 나무는 고사한다. 어찌 보면 잎이 단풍으로 변하고 낙엽이 지는 것은 잎의 자살이다. 가지에 붙은 잎의 끝부분이 딱딱하게 굳어지면서(떨겨층) 가지와 잎이 분리되면서 스스로 추락한다.

'수고천척 낙엽귀근(樹高千尺 落葉歸根)', 나무가 아무리 크고 무성해도 떨어진 잎(낙엽)은 뿌리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인재유학 장려 등 개방정책을 추진할 때 일부에서의 우려 목소리를 한방에 잠재웠던 등소평의 말이다. 유학파들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중국의 새 주역이 되었음이 증명되었다. 낙엽도 마찬가지다.

'인지적 능력이 없다'는 낙엽이 하는 일이 이 정도면 이성(理性)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마냥 생존 본능으로 치부하기에는 낙엽이 임무와 역할이 막중하다는 얘기다. 북풍한설(北風寒雪)도 마다하지 않는 용기 역시 단순 식물로 보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감마저 든다.

우리나라엔 이런 낙엽만도 못한 인간들이 참 많다. 정치인들이다. 인지적 능력이 있다고 자부하는 인간들이 인지적 능력이 없는 단풍, 낙엽만도 못하다는 얘기다. 나무는 낙엽을 만들면서 절대 어떤 손해도 끼치지 않는다. 오히려 희생한다. 정치인들은 희생하는가? 그들은 정치적 권리를 위임해준 국민과 나라를 위해 희생한다고 한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모두 자신들을 위해서다. 나라와 국민에 대한 안중은 코딱지만큼도 없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정치의 중심에는 자신 밖에 없다.

모두 마약에 중독된 자와 같다. 정치적 권력은 마약과 같기 때문이다. 한번 잡으면 놓을 수 없는 속성이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와 같다. 권력을 잡고 있으면서도 늘 권력에 굶주린 형상이다. 이러니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좌우, 보수 진보 대립이 광복 이후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경제는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임대'라는 현수막이 건물 곳곳에 나붙기 시작한 지 언제인지 모른다. 집권자는 장밋빛 청사진만 보란 듯이 내보인다. 남북문제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질질 끌려가는 형국이다. 이러다가 뭔가를 또 퍼다 주어야 하는가? 우리만 우겨대는 우리와의 혈맹, 미국은 일찌감치 한국을 돌려놓고 북한과 직접 정치적 거래를 시작했다. 일본도. 중국도 한국 제치기에 서둘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불리하고 정치경제학적으로 운신의 폭이 몹시 좁은 한국은 어떤 묘책을 찾아야 하는가? 많은 정치인이 묘책을 찾기에 분주하지만 실제 찾는 것인지, 흉내만 내는 것인지 모호하다. 그러니 답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오히려 오래지 않은 과거로 회귀다. 중구난방(衆口難防), 오합지졸(烏合之卒)의 나라로 말이다. 과거 지향적 정부라서 그런가? 김광균(金光均)은 '추일서정(秋日抒情)'에서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라 했다. 낙엽만도 못한 것은 지폐가 아닌 나라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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