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눈] 성낙수 시인

이 궁리 저 궁리 다해 봐 아직까지 어떻게 싸워 봐도 일본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이길 수 없을 때 그래도 싸워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닌 것이다. 지소미아 분쟁이나 무역제재 문제를 봐도 우리가 일본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이다.

반일감정을 가지고 일본을 이길 수 없다. 그렇다고 반일감정을 버린다고 일본을 이기는 것은 아니다. 가진 것이 없을 때 무시 받는 것은 개인과 개인 간의 문제만을 아님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사회에서도 그렇고 국가 간에도 서로의 실익과 유불 리에 따라 관계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일본을 긴 안목으로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의 가까운 친구인적도 있고 적인 적도 있다. 그러나 가까이 하기엔 너무한 당신인 존재이다. 일본은 분명 우리에게 친구일 수 없다. 과거 전력으로 볼 때 일본은 경계 대상인 것이다. 침략야욕은 한 번 망해 봐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독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일본의 한 번의 패망으로 정신 차릴 집권자들의 야욕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지소미아 건 하나만으로 봐서는 미국의 처신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일본이 큰 자식이고 우리는 둘째 자식 꼴이 되었다. 우리의 입장은 외면하고 본인과 일본의 마음만을 헤아린 것이다. 이해하고 그냥 넘어가면 계속 푸대접을 받을 것은 뻔하다. 반발해도 얻을 것은 많지 않다.

필자는 '지소미아 반전, 파국은 막았다'란 기사를 보며 의아해 했다. 개인의 소견으로 볼 때 잘못 내민 패가 별게 아닌 것으로 상대방이 가볍게 넘겨 버린 결과인 것이다. 한심하게도 상대방이나 주위에 안 통하는 잘못 패를 쓴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미국인의 생각 일본인의 생각의 차이가 많음을 알아야 한다. 국가간 환경 차이와 역사 차이 때문에 생각 자체의 차이가 매우 큰데 폭 좁게 판단하여 우리는 대응하고 있어 빈번하게 실패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일본과의 외교에 있어 우리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실익이 없는 자존심 싸움을 외교에서 벌이는 것은 우매한 행위이다. 일본은 우리의 친구도 아니고 적도 아닌 것이다. 이 결정은 일본이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대내적 대외적으로 어떻게 잘 살아가는 것으로 결정된다고 본다.

우리가 일본보다 더 잘 살면 친구가 되고 우리가 구차하게 못 살면 일본은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어쨌든 서로 반목해서는 상호간 이익이 될 수 없음을 양국 간 깊이 알아야 한다.

백색 국가에서 제외시키는 것과 독도를 자기 땅이라 하는 것은 선전 포고에 맞먹는 행위다. 이에 합당한 조치를 우리도 취해야 한다. 적대시 하고 우리 땅을 자기네 땅이라 주장하는 이웃은 이웃 나라가 아니라 우리의 적대국으로 전쟁 상태로 일본에 대치해야 한다. 우리도 전 품목 수출 금수 조치와 여행금지 국가로 확정해야 한다.

일본은 우리의 미국 입장을 고려한 지소미아 종료 잠정적 연기로 끝난 결과에 자기들이 완벽하게 이겼다고 떠들고 있다. 한국 때리기로 위기를 돌파해 살아남고 있는 교만한 일본의 미래는 어두울 뿐이다. 아베의 피는 속일 수 없다. 안보 시스템을 헤치는 일은 차후 우리와 미국과 일본 간에 없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서로 간의 신뢰에 달려 있다. 자국의 이익만을 위할 때 신뢰는 확보되기 어렵다. 거시적인 서로의 이익추구에 관심을 보내야 한다.

지소미아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을 살펴보면 일본에서 현지 상황을 전한 제프리 킹스톤 템플대학교 교수는 "문 대통령은 한 국가의 수장다운 모습을 보이며 긴장감을 낮추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일본은 아직도 이번 결정을 두고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고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한국이 WTO 제소 절차까지 중지시키며 먼저 움직임을 보였으니 이제 일본이 이에 대해 반응할 차례라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일본에 대한 예민한 반응보다는 타격적인 행동을 보여야 한다. 모든 것을 다 걸고 싸워가야만 독도 문제, 무역문제도 해결이 가능한 것이다. 두려울 것 없이 다 걸어 싸우는 것만이 최선이다. 야비한 자들과의 싸움에 있어서는. 일본과 우리의 관계는 쉽지 않아 생각의 전환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독일도 한 번 망하고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했다. 두 번 망하고 나서야 남을 이해하는 자세가 확립된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성낙수 시인
성낙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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