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울란바토르 근교에 있는 돌궐제국 명장 톤유쿠크 비문에는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고 한다. 혁신(이동)하지 않고 현재에 안주하면 서서히 쇠퇴한다는 유목민족의 지혜가 담긴 격언이다.

농경민족은 물자의 생산을 위해 한곳에 정착했고, 정착지의 외침을 막기 위해 성을 쌓고, 잉여 생산물의 분배의 불평등이 발생하며, 자연스럽게 재력으로 무력을 소유하는 지배계층이 생겨나게 되어 국가를 일으키기 쉬웠다고 한다.

이와 달리 비옥한 토지를 갖지 못했던 유목민족은 유라시아 변방에서 새로운 초지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여야 했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을 이동하면서 어쩔 수 없이 변화무쌍하고 가혹한 환경에 적응하다 보니 강인함과 함께 유연한 문화를 갖게 되었고, 초원을 헤매다 주변 국가들을 휩쓸어 제국을 이루곤 하였다. 유라시아 대륙의 역사는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의 경쟁의 역사이고 승자는 언제나 유목민족이었다.

비교적 근래에 중국을 지배했던 만주족이나 유럽까지 영역을 넓혔던 몽고족은 물론 주변의 기록에 야만인들인 것처럼 그려졌던 돌궐, 스키타이족, 흉노족, 훈족 등이 바로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했던 유목민족이고, 요즈음에는 이들 Nomad 민족의 역사가 재조명되고 있다.

그들의 강인함과 유연한 사고와 기동성으로 변방의 척박한 환경을 딛고 부흥하는 과정과 극적으로 쇠퇴하는 유목민족의 역사는 영화보다 스펙터클하여 매력적이기 때문일까? 무엇보다도 그들의 부흥의 역사에는 지역적 경계가 흐릿해진 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는데 필요한 혁신의 가치가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근래 대형TV, 냉장고, 세탁기 등 정착을 전제로 한 백색가전을 생산하는 기업의 고전과 스마트폰과 같은 이동을 전제로 한 IT전자제품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의 승승장구도 이와 같은 지구촌 경제생태 변화와 무관치 않다. 바야흐로 새로운 Nomad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증명하는 예일 터이다.

과학기술이 고도화되어 지리적 장벽이 허물어진 현대에 이르러 나만의 벽을 둘러치고 안주해서는 자칫 수년 만에 옛사람이 되고 만다. AI기술과 이동통신기술로 무장한 새로운 세대의 빠른 사고의 전환과 정보력 앞에서는 주판알만 튕기는 옛 쌀집 주인은 경쟁력이 없는 것이고, 발품 파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고지식한 소비자들은 눈탱이(?)를 맞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변호사의 업무도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고정된 사무실과 사무실 앞의 법원이 주된 업무 장소였다면, 지금은 테블릿PC, 스마트폰을 가지고 전국을 다니면서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권당 수백 장에 달하는 수십 권의 법률서적을 외부에서 검색할 수 있고, 상대방의 준비서면도 이동중에 전송받아 그에 대항하는 서면을 작성하여 전자소송 시스템을 통하여 접수하는 일도 가능하다. 이런 기동성은 지방의 변호사에게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변방은 부와 인구 규모에서 객관적으로 중심에 비해 열세에 있다. 하지만 필자도 지방에서 로펌을 운영하고 있지만 기동성을 무기로 하여 SNS를 통해 전국적으로 업무의 성과를 홍보하여 서서히 업무의 지역적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변호사 업무의 지역적 경계는 서서히 사라질 것으로 생각된다.

고 신영복 선생의 '변방을 찾아서'에 따르면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의 청산이 필요하다. 콤플렉스는 무지에서 온다. 무지의 장막을 걷어내기 위해서는 계속된 지식의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그것이 Nomad 삶을 지향하며 살아온 필자가 새해를 맞이하여 판례 한 줄 더 공부하는 이유이다.

권택인 변호사
권택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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