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자원 모으고 엮어 시너지 발휘… 유쾌한 '공간 실험'

여우잡화점의 피리를 맡고 있는 김해주씨와 두루미책방의 피리를 맡고 있는 이다솜씨(사진 오른쪽)가 함께 만든 잡지 '월담'과 책방 간판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 김정미
여우잡화점의 피리를 맡고 있는 김해주씨와 두루미책방의 피리를 맡고 있는 이다솜씨(사진 오른쪽)가 함께 만든 잡지 '월담'과 책방 간판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 김정미

 [중부매일 김정미 기자] 충남 금산 간디학교 졸업생들이 지역, 문화예술, 청년을 주제로 시골에서의 자립 성공 스토리를 만들고 있다. 한 그룹은 잡화점으로, 또 한 그룹은 동네 책방을 열었다. 이야기와 자원, 사람을 모으고 잇고, 엮어가면서 희망일기를 쓰고 있는 청년들은 자립을 위한 도전과 실험이 할 수 있고, 좋아하고, 관심 있는 일이라 행복하다고 말한다. 금산 여우잡화점과 두루미책방의 피리들을 만났다. / 편집자
 

#여우잡화점 이야기
 

금산 청년문화예술협동조합 들락날락의 조합원들은 잡화점과 책방의 공간지기들을 피리라고 부른다. 독일 하멜른에서 내려오는 전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를 의미하는 호칭이다. 마법의 피리를 부는 청년들이 되어 금산과 전통시장에 문화예술의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포부가 담겼다.
 
시골, 지역에서도 얼마든지 미래를 꿈 꿀 수 있다고 믿는 청년들이 피리를 자원했다. 자립을 위한 실험과 도전은 2019년 4월 본격화됐다. 첫 창업 업종은 잡화점. 문구류와 인테리어 소품부터 금산의 약재들로 만든 쌍화차까지 다양하고 차별화된 물품을 판매하고 있다. 가게 이름은 여우잡화점이다.
 

처음부터 짝꿍 가게를 염두에 두고 지은 이름이었다. 금산 발전을 위해선 청년, 주민 등 지역 구성원들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교훈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짝꿍 가게는 문을 열기도 전에 두루미책방이라는 이름부터 갖게 됐다.

여우잡화점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는 금산다움과 친환경이다. 금산에서만 만날 수 있는 쌍화차는 잡화점의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금산 약초시장의 약재를 활용해 만든 쌍화차는 어르신 관광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여우잡화점의 피리를 맡고 있는 김해주씨는 지역 청년 예술가들의 창작품을 판매하는 플랫폼으로서의 잡화점도 구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간은 머무는 곳이기도 하지만 소통과 협력을 위한 실험실습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두루미책방 이야기

지난해 연말, 금산시장 청년몰에 동네 책방이 문을 열었다. 여우잡화점의 짝꿍 가게다. 참고서 위주의 서점들과는 결이 다른 낯선 책방. 피리를 맡고 있는 이다솜씨는 금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책들을 소개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단행본 비율이 높고, 판매하는 책은 소량이지만 다양한 국내 독립출판물을 만날 수 있다. 두루미책방을 상징하는 키워드는 지역, 청년 그리고 페미니즘이다. 서가 구성 자체가 낯설지만 산만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주제의 통일성 때문이다.

이다솜씨는 지역에서 살아간다는 것, 특히 청년이면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내용의 책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아직 책을 찾는 수요가 많지는 않지만 미리 걱정도 하지 않는다.
 

"여러 통계와 책방을 운영하는 분들의 인터뷰를 접하면서 책방은 할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책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무모한 생각은 처음부터 버리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죠. 저는 다른 가치를 주목했어요."
 
자립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돈을 많이 벌겠다는 목표는 없었다. 금산에 책을 소개하는 일, 사람들이 공간을 이용하는 과정 자체가 소통의 길을 내고 협력과 연대의 시너지를 만드는 일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여우잡화점과 함께 두루미책방도 다양한 실험을 계획 중이다. 주민들과 함께 뜨개질을 배우고 드로잉을 하면서 주민을 엮고 재능을 잇는 꿈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이다솜씨의 말이다. "책을 통해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책은 깨우침을 주기도 하죠. 금산 지역 청년들이 두루미책방에서 '인생의 책'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잡지 '월담'을 만든 까닭

들락날락 협동조합 내 작은 동아리인 월담팀은 지난해 페미니즘 잡지를 펴냈다. 충남여성정책개발원의 사업비를 받아 김해주씨와 최한나씨를 비롯한 세 명이 함께 만든 잡지 이름이 월담이다. 담을 넘어야 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주로 다뤘다.
 
지속가능한 지역 살이가 잡지의 주제. 김해주씨는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활동가로 살아가고 싶은 이유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고 싶기 때문"이라며 "청년 문화예술 활동은 지역과 청년들을 건강하고 윤택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활동가로서 기대하는 삶의 지향은 소박한 풍요, 생태주의, 평등이다. 청년들은 스스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여전히 비주류 속의 비주류이지만 지역에서 살아가는 여성활동가로서 차별에 맞서고 세상적인 가치에 맞서면서 주류문화의 유쾌한 전복을 꾀하고 있다.
 
청년들을 말한다. 청년의 미래는 곧 금산의 미래라고. 잡화점을 열고 잡지를 만들었던 김해주씨, 책방을 연 이다솜씨는 여우잡화점과 두루미책방을 금산의 '실험실'이면서 '금싸라기'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비록 잔 부스러기에서 출발하지만 머잖아 아주 드물고 귀한 금싸라기로서의 가치를 갖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다솜씨는 금산의 문화를 바꾸는 커뮤니티 공간으로서의 책방을, 김해주씨는 다양한 실험과 도전이 이어지는 잡화점을 꿈꾸고 있다. 두 공간이 금산에서 얼마나 적절한 문화 공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다. 도전은 시작됐고, 공간엔 사람이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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