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장영주 화가·국학원 상임고문

정월, 이월이 가니 겨울도 완전히 물러간다. 실 끊어진 연처럼 겨우 내 묵은 기운이 스러져 간다. 산천은 더욱 건조하고 출산을 앞든 어미처럼 가장 마르고 피폐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이미 새 생명은 힘차게 솟아오르니 춘삼월, 곧 찬란한 새봄이다.

뭇 생명이 기지개를 켜면서 환하게 새로움을 구가 하니 겨울을 털어 내고 새봄을 맞이할 수 있음은 큰 복(福)이다. 처자들은 산으로 들로 나물을 캐면서 오랜만에 바깥나들이를 한다. 이곳저곳에서 쑥을 캐어 찧고 쌀과 찹쌀을 버무려 쑥떡을 만들어 나누어 먹는다. 떡은 '덕(德)이 깃든 음식'으로 덕이란 본디 하늘의 크디 큰 사랑이다. 밥이나 라면은 지어서 혼자, 또는 식구끼리만 먹지만 떡을 만들어 혼자 먹는 사람들은 없다. 그런 사람은 덕이 뺑소니 친 사람이니 심청전에서는 '뺑덕어멈'이라고 부른다. 그러한즉 복과 덕은 인간이 가장 좋아 하는 단어이다.

복(福)이란 한자를 풀어보면 '하늘과 땅(밭)의 덕으로 입으로 들어 갈 먹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먹거리가 확보되었으니 얼마나 큰 행복이며 다복인가. 서경의 홍범편에는 인간의 복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였다. 첫째 장수, 둘째 재산, 셋째 건강, 넷째 베품, 다섯째 평안한 죽음이니 일컬어 '오복(五福)'이다. 우리의 이름에도 '칠복'이 '오복'이 '천복'이라는 이름이 흔하다. 이처럼 복을 받기 위하여 인간은 평생을 노력하고도 빌고 또 빈다.

인간의 완전한 복은 개인의 건강과 가정과 나라의 행복, 지구의 평화이다. 이는 곧 '내가 누구인가'라는 깨달음이란 복에 달려 있다는 의미이다. 그 깨달음의 진도에 따라 복이 담기는 그릇의 크기가 결정되고, 그 복을 나누어 주는 덕의 범위가 달라진다. 복은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어내는 것이라는 것이 우리네 마음이다. 그러기에 '복 많이 받으세요.'가 아니라 '복 많이 지으세요.'가 한민족의 본래 덕담이다.

한민족의 자랑꺼리인 위대한 경전, 참전계경(參佺戒經) 제232사에는 '복(福)이란 선한 일을 했을 때 찾아오는 경사'로 구체적으로는 6가지 큰문과 45가지 작은 문으로 들어온다고 가르치신다(福者 善之餘慶 有六門四十五戶). 그 여섯 가지 큰문의 각각의 이름은 인(仁), 선(善), 화(和), 순(順), 관(寬), 엄(嚴)이다. 유관순(柳寬順)처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국민의 이름에 가장 많이 쓰여 지는 단어들로 자녀들의 생이 다복하기를 기원하는 부모들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

유관순께서는 1919년 기미년 3월 만세운동에 목숨으로 참여하신다. 그보다 10년 전인 1909년 3월 26일 안중근께서 순국하신다. 그분들은 자신을 넘어 나라와 인류를 위하여 독립의 복을 만들고 자유의 덕을 펼치신 분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겠다고 이름난 산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고, 점사에 돈을 바친다. 빈다는 것은 종교적 행동으로 인간의 뇌에서 창조 된 신이 거꾸로 인간의 삶을 좌지우지 하여 모든 것을 휩쓸어 간다. 나만, 우리만, 잘되면 된다는 종교적 이기주의로 갈등과 다툼이 대를 이어가는 인간의 역사로 '기복신앙'이 위험한 것이다. 복이 재앙이 되고 덕이 돈좌(頓挫)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진정 복을 받고 싶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신뢰와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복과 덕은 사랑과 신뢰에서 온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에게서 부터, 가장 작은 일에서부터 신뢰와 믿음을 쌓아야 한다. 다음은 서로에게 존경을 주고받아야 하며 그것이 이 세상에서 자기를 보호하고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복과 덕이 된다.

'00 부동산'이란 상호는 십여 년 전만 해도 '00 복덕방(福德房)'으로 불리었다. 집이나 땅을 팔고 사는 것을 중간에서 조정해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 복덕방이니 그야말로 새 집, 새 땅에 복(福)과 덕(德)이 깃들라는 마음이다. 근자에는 투자와 재산증식의 각종 전략으로 기업화하면서 축복의 마음은 사라진 채 부동산이라는 차가운 경제용어로 바뀌었다.

장영주 화가
장영주 화가

여하튼 복은 만들고 덕은 나누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강조하거니와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존중해야 한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남도 존중하지 못하고, 남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을 그 누가 존중할 것인가. 존중과 신뢰, 그것이 바로 복과 덕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새봄에는 만인이 만인의 늑대가 아닌 만인이 만인의 복덕방이 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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