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한마디로 삶에 대한 성찰이 인문학 발전의 기초가 된다. 인문학이 위기라는 말은 대학의 구조조정이나 과학 발전의 결과가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삶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 즉 내면과 마주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지 않으면 삶은 불편하지 않다.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면 고민할 것도 없다. 삶이 왜 이리 무거운지, 내 모습이 왜 이런지를 생각할수록 삶은 버거워진다.

인문적 사고는 삶의 문제와 직접 맞닿아 있다. 인문적 사고가 경제적이지 않다는 통상적인 인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인문적 사고는 생산성과 낭만성을 동시에 갖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간의 존재가치를 높여주는 것은 인문적 사고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삶이 팍팍해질수록 인문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인문적 사고의 생산성과 낭만성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갖는다는 것.

인문학자 김주연에 의하면, 인간의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인문학의 생산성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흐르는 강물의 색을 연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시시때때로 변하는 강물 빛의 색상을 구분해내기 힘들고, 사람마다의 시각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 내부는 이와 같은 강물의 빛깔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색의 시간을 통해 매일 매일 자신의 인식 차이를 느껴라."

낭만성도 언급한다. "70대 노인이라 할지라도 청년들만큼 낭만적인 인문학 정신세계를 지닐 수 있다. 20대에 쓴 처녀작이 대표작인 작가가 있는가하면 괴테와 같이 죽기 전의 작품이 대표작이 될 수 있다. 인간의 삶에서 낭만성을 제거한다면 그 삶은 얼마나 공허하고 건조하겠는가. 계절의 변화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도 낭만성이다. 예컨대 가을은 기승전결(起承轉結) 중 결로 들어가는 '전'의 단계다. 과거의 모습을 벗고 맺음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이 또한 낭만성이 될 수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이런 인문적 사고의 낭만성을 잘 표현해준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가을입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시고 들녘의 바람을 놓아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영글도록 명하시고 그것들에게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 후에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럽게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침팬지나 오랑우탄이 인간과 98.6%의 유사성을 보이지만 다른 점은 생각하는 힘이다. 인간만이 사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필자는 이를 '사색력(思索力)'으로 부른다. 인간은 이런 사색력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탐색한다. 삶을 총체적으로 성찰하는 것에서 한 인간의 삶이 완성된다는 의미다. 사색과 인간의 문제, 인간 삶의 문제는 사색과 불가분성을 갖는다. 우리가 삶의 길을 잃었을 때, 희망을 잃었을 때,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은 길 위의 사색을 통해서다.

[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앞서 지적했듯이, 사색은 삶을 풍성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삶을 완성시키기까지 한다. 소크라테스는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삶이 아니라고 했다. 사색은 자신의 반성을 전제로 한다. 자신의 내면에 집중할 때 진정한 나 자신과 직접 마주할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자신과의 끊임없는 쟁투를 통해 한 인간은 자연스럽게 진화한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들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이 세상에서 낯설고 이상한 이방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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