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눈] 김동우 YTN 충청본부장

TV 코미디나 시트콤을 시청할 때 근원을 알 수 없는 웃음소리를 자주 듣는다. 웃는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갑자기 포복절도하는 웃음소리 말이다. 도대체 누구의 웃음일까? 실제 관객의 웃음이 아니다. 미리 녹음된 웃음을 삽입한 효과음(effect)이다. 이른바 '통조림 웃음(Canned laughter)'이다. '웃음 트랙(Laughter track)', '가짜 트랙(Fake track)'이라고도 한다. 일부 가수들이 공연할 때 인기도를 높이기 위해 돈을 주고 동원한 일종의 '박수부대'와 같다고나 할까?

'통조림 웃음'은 1950년 초반 미국 음향기술자 찰스 더글러스(Charles R. Douglass)가 만들었다. 왜 '통조림 웃음'을 만들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청자들의 프로그램에 대한 흥미와 몰입 유발 때문이다. 일부 코미디나 시트콤, 음악회 등 오락, 예능 프로그램들은 공간 부족이나 관객 모집의 번잡 등을 이유로 관객 없이 진행될 때가 있다. 관객이 없으니 당연히 웃음이나 박수, 환호 등의 반응이 없다. 이럴 때를 상상해 보자. 시청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말이다. 그 프로그램에 대해 흥미를 잃게 되고 몰입하지 못 할 것이 분명하다. 시청률을 먹고 사는 제작자들은 관객 없이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더글러스가 나섰다.

그는 프로그램의 극적인 환경은 물론 프로그램과 시청자의 혼연일체 조성을 위해 다른 상황에서 녹음한 웃음을 적당히, 적절히 프로그램 중에 삽입했다. 통조림을 따 그 속에 들어있던 웃음을 꺼냈다. 시청자들은 진짜 관객이 웃는 소리로 착각하고 함께 따라 웃었다. 웃음은 전염된다는 단순한 논리가 적용된 셈이다.

인간 두뇌에는 '거울 뉴런(mirror neuron)'이 있다. 이 '거울 뉴런'은 어떤 행동을 할 때뿐만 아니라 동작을 보거나 소리를 들을 때 그와 같은 행동을 따라 하도록 활성화된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동작을 쉽게 모방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공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거울 뉴런' 때문이다. 특히 '거울 뉴런'은 웃음과 같은 긍정적 감정에 대해서는 더욱 즉각적 공감과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참고로 옆 사람이 하품하면 자신도 따라 하는데, 이 역시 '거울 뉴런'의 영향 때문이다.

더글러스의 '통조림 웃음'은 효과 만점이었다. 시청자들은 '통조림 웃음'을 듣고 진짜 웃음인 줄 알고 자신들도 따라 웃었다. 심지어 폭소 상황이 아닌데도 TV가 웃어주면 생각 없이 웃음보를 터뜨리기도 했다. 특히 시트콤과 코미디(무 관객)는 '통조림 웃음' 사용이 절대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통조림 웃음'이 종종 사용된다.

'통조림 웃음'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방송 매커니즘이 날조(捏造)한 허상(虛像)이 우리 감정을 통제하고 지배한다는 점이다. 자발적인 웃음이 아닌 강요되고 피동적인 웃음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진정한 웃음을 유도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가짜 웃음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짜 넣어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1990년 이래 미국이나 영국 등 많은 국가의 제작자들은 한동안 약방의 감초처럼 쓰였던 '통조림 웃음' 사용을 극도로 자제하는 실정이다.

어찌 되었건 어떤 웃음이라도 좋다. 웃음은 스트레스의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 양을 줄여준다. 하루 45분만 웃어도 고혈압, 스트레스 등의 질환도 치료가 가능하고, 10분간 통쾌하게 웃으면 2시간 동안 고통 없이 편안한 잠을 잘 수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특히 웃음은 체내 면역항체 강화와 함께 세균 침입이나 확산을 막아주는 천연 엔도르핀(endorphin)과 엔케팔린(enkephalin)을 분비해 육체의 고통을 경감시킨다.

요즘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감염 차단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사람 간의 물리적 접촉이 줄어들면서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효과를 보고 있지만,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외출 제약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피로, 불안, 무기력, 우울증 등의 고통이다. 손쉬운 완화책 가운데 하나가 웃음이 아닐까? 그렇다면 방법이 무얼까?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YTN 충청본부장

사회적 거리두기와 TV 시청률의 상관관계가 높다는 점에서 프로그램에 '통조림 웃음'의 활성화다. 마침 최근 음악회 등 일부 예능 프로그램이 사회적 거리두기 동참을 위해 파격적으로 관객 없이 진행하는 점은 '통조림 웃음'의 활성화를 위한 무임승차라 볼 수 있다. '통조림 웃음'이 제 역할을 할 때가 왔단 말이다. 억지라도 '통조림 웃음'을 만들어라. 코로나19 감염이 아닌 웃음의 전염으로 외출 제약에 따라 망가진 항상성(homeostasis) 회복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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