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코로나19가 알려준 건 일상의 중요함 만이 아니다. 온라인 강의를 만드는 방법도 알게 되었고, 이를 제작하면서 강의를 들어주는 청중의 중요성도 다시금 깨달았다. 학생들의 초롱한 눈빛이 보고 싶고, 반쯤 감긴 졸린 눈마저 그립다. 현장에서 들어주는 이가 없으니 청중의 표정을 보고 강의 방향을 바꾸거나 진도 조절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쉬움이다. 그래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그 어느 해보다 알찬 강의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제일 아쉬운 건 1학년 신입생이지 싶다. 대학 1학년 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입시의 늪에서 나와 누려보고자 했던 자유가 늦춰진 아쉬움이 클 것이다. 4월의 대학교정은 1년 중 가장 싱그럽고 활기찬데 텅 빈 학교를 거닐 때마다 안타까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잘 되면 5월에는 만날 수 있을 텐데, 그때는 꼭 신입생들의 재잘거림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학교의 변화뿐 아니라 생활도 변화가 많았는데,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동안 못 봤던 영화나 드라마를 몰아보고 사두기만 하고 열지 않던 책을 뒤적이고 지낸다. 그러다 트로트 가수들 경연까지 보게 돼서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온종일 듣기도 한다. 트로트가 이렇게 멋진 음악이었나 싶게 만드는 가수를 만난 덕이다. 내가 응원한 가수는 성악가 출신 트바로티 김호중.

온종일 유튜브를 타고 놀다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는 팬까페 등록까지 생전 처음 해보았다. 열심히 댓글을 달아 마침내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정회원이 되자마자 놀란 건 그들의 팬덤. 정회원이 되고 며칠 후 가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팬까페에서 모은 2억 800여만 원의 기부가 이루어졌다. 정말 대단한 힘이다. 사회복지기관에서 그렇게 노력을 해도 어려운 일이 한 가수의 팬까페에서, 단지 아이디만 공개된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기부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직업적으로 아는 나로서는 2만 명이 넘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힘을 직접 목격한 것이다.

2억 원 중 1억 원은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코로나19 관련 성금으로, 1억 원은 그 가수가 졸업한 김천예고에 기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중요한 자원 동원에 해당하는 기부를 가장 이끄는 방법은 '요청'이라고 가르친다. 기부요인과 관련한 선행연구는 대체로 직업이나 연령, 소득, 교육 수준 등의 인구 사회학적 특성이나 기부 동기, 기부 경험 등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익명의 팬까페에서 이루어진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기부 경험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중요한 동기가 되는 '이타주의' 요인을 설명하고 싶다. 이타주의는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으로, 행동의 목적을 타인의 행복에 둔다는 것이다. 노래를 통해 위로와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내가 아닌 그 가수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기부를 지속할 의사를 표한다. 그들은 우리가 그렇게 강조하던 세제 혜택을 원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사회복지 현장은 사람들에게 어떤 위로와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어찌하면 기부를 이렇게 즐겁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까.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에는 '마음은 가까이'가 함께 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촘촘한 건강보험 제도와 성숙한 시민 의식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상황에 처한 지금, 우린 모두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위한 이타주의를 발현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모여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15일,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 중 누가 이타주의적 동기로 출마한 사람일까. 그걸 구분할 수 있다면 내 가수가 부른 노래 가사처럼 난 미련 없이 그를 선택할 것이다. 오늘도 이렇게 일상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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