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불행 Ⅰ
인간의 불행 Ⅰ
  • 중부매일
  • 승인 2020.04.2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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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눈] 김동우 YTN 충청본부장

인간은 불행한 존재다. 불행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원시 수렵채취시대에는 불행이란 단어가 없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삶의 도구나 수단이 사용되기 전, 자연과 인간의 삶이 구분되지 않은 시대에 말이다. 이때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았다. 눈, 비가 오면 동굴로 들어가 쉬었고, 천둥 번개 치면 하늘과 신의 노여움으로 알고 천신에게 제를 올렸다. 자연에 대한 어떤 저항이나 해결책을 애써 구하지 않았다. 네 것 내 것의 구분도 없었다. 무엇이든,

남기려 하거나 더 가지려 하지 않았다. 사냥할 때는 함께 나섰고, 포획한 동물은 똑같이 분배했다. 인간을 차별하고 구분하는 경계가 없었다. 분명 삶 자체가 행복이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역사발전 법칙에 따라 수렵채취시대에 머물 수 없었다. 노예제를 거쳐 봉건제로 이어지고 급기야 자본주의 사회로 진입했다. 현재 인류는 학자마다 다른 표현을 쓰지만, 근본이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삶이 마냥 즐겁고 만족스럽지 않게 됐다. 행복의 반대인 불행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원시 수렵채취시대보다 자본주의는 여러 면에 있어 더 발전된 사회다, 왜 행복의 강도가 오히려 약해지고 불행이 발생한 것일까? 사회 발전과 행복 강도는 반비례하는 것일까?

원시 수렵채취시대 이후 모든 사회에 불행이 편재해 왔지만,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불행을 철저하게 겪고 있다. 노예제나 봉건제에도 물론 불행은 있었다. 그러나 이 불행은 상대적 불행이 아닌 절대적이어서 인간은 그 불행을 경험하기에 감각이 무뎠다. 노예나 농노는 평생 그 위치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들의 삶이 불행임에도 불행이라고 느끼지 못하거나 느낀다 해도 그 불행을 표출할 수 없었다. 불행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 이후 행복과 불행에 대한 사람들의 느낌이 달라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행복보다 불행이 앞섰다. 분명 자본주의 사회는 그 이전 사회보다 의식주의 삶이 보다 발전되고, 욕구 충족을 위한 필요한 것들을 쉽게 획득할 기회가 확대됐는데도 말이다. 놀라운 생산력의 발전은 자본주의가 인류를 위해 성취한 가장 진보적인 성과물이라 할 수 있지만, 그 발전의 수면 아래에는 극복불능의 문제점, 이른바 불행이 침잠해 있기 때문이다. '부족함이 부족한 사회'에서 오히려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셈이다.

'풍요로운 사회'에서 왜 오히려 불행을 느끼는 것일까? 답을 찾기 위해 19세기 후반 '자본주의' 용어 창시자 독일 칼 마르크스가 불행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자. 그는 자본주의 분석을 통해 인류 사회가 불행한 사회임을 밝히고 이 불행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공산주의) 출현을 기대했다. 그는 '사적 소유와 노동의 상품화에 기초해 자본의 이윤추구를 본질적 동기로 해서 작동하는 부르주아 생산양식'이라 자본주의를 정의한다. 사적 소유는 재화나 생산수단 등을 배타적으로 갖는다는 의미다. 노동의 상품화는 노동을 팔아 일을 해 임금을 받는다는 뜻이다.

소유한 자와 소유하지 않은 자의 관계는 이미 분열된 계급사회이고, 노동을 판 자(노동자)와 산 자(자본가) 역시 계급사회다. 자본의 이윤획득은 노동을 산값보다 더 많은 값의 창출을 의미한다. 주목할 점은 자본가는 생산물에 대한 사회적 필요 여부와 관계없이 이윤만 발생하면, 노동력을 사서 물건을 생산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같은 생산양식에서 불행의 실마리가 발생한다. 많은 사람이 생산물을 필요하지 않은데도 자본가들은 이윤만 획득한다면 생산을 통해 소비 강박을 유발하고 결과적으로 억압적으로 사용하게 만든다. 사고 싶지 않아도 부지불식간에 구매 충동이 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소유자 즉, 노동구매자는 행복하고, 노동판매자는 불행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모두 불행하다. 왜 그럴까? 노동 본질의 왜곡과 자본의 억압 때문이다. 노동은 '유일한 생존과 자아실현의 수단, 기본적인 사회적 생산요소'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삶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 노동이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YTN 충청본부장

이런 노동이 왜곡되어 노동자가 낯설게 느껴(소외) 자아실현을 실패하는 데 문제가 있다. 자신이 일 해서 만든 생산품을 마음대로 사용 또는 소유하지 못하는 데다 자신의 노동력을 산 자본가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의도와 동떨어진 상품을 만들어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이 불가능하게 된다. 노동자는 자아실현 실패로 불행해진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자아실현을 위한 노동을 본의 아니게 혐오한다. 자아실현을 포기한 채 노동을 기피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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