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눈] 김동우 YTN 충청본부장

대권(大權). '나라의 최고 통치권자인 국가 원수가 국토와 국민을 통치하는 헌법상의 권한'이다. 말 그대로 '大'단한 '權'력이다. "꼴 같지 않은 그 인간이 대권에 도전한다고?" "다음 대선에서 대권주자로 꼽힌다." 흔히 듣는 소리다.

과거 중국에서는 하늘을 대신해서 천하를 다스리는 황제를 천자(天子)라 했다. 천자에게 천하를 다스릴 절대적인 힘이 주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천자의 권병(權柄)'이다. 하늘의 권력이니 절대적으로 막강하다. 바로 '대권'의 권이 이 '권병'의 권이다. '대권'은 함부로 말을 해도 안 되고 감히 포획하려해도 안 된다. 오로지 하늘이 점지한 천자만이 지니는 절대적 권력과 권능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국에서 황제의 절대 권력으로 권병을 사용했고, 제국주의 시대 일본에서는 천황의 절대 권력을 권병에서 유래한 '대권'으로 표현했다. '대권은 대일본제국 헌법 하에서 국법상 천황에 속한 권능, 즉 광의로는 통치권의 전 범위로 입법권, 사법권을 포함하며 협의로는 의회의 동의나 독립기관에 위임하지 않고 천황이 독자적으로 하는 행위를 말한다.'(일본 세계대백과사전 인터넷판)

'권병'의 '柄'은 '손으로 다루는 연장이나 기구 등의 끝에 달린 손잡이 또는 자루'다. 이 자루를 쥐면 마음껏 뭔가를 두드릴 수 있고, 내리칠 수 있고, 누군가에게 위협을 줄 수 있는 등 물리적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망치를 연상하면 쉽게 이해된다. 이런 형태적, 도구적 의미에 근거해서 '병'은 권력이나 권세 등 물리적, 위세적인 힘을 포함하는 의미가 됐다. 천자의 '권병'행사는 그 어떤 정당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거역, 저항할 수 없는 절대 권력이기 때문이다.

중국 춘추시대 송나라 때 사성(司城, 재상급 벼슬) 자한(子罕)과 송나라 군주, 평공(平公)의 이야기다.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백성의 어려움을 다스리는 것은 군주께서 백성에게 포상을 하사(下賜)하고 처벌을 내리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國家之危定 百姓之治亂 在君行之賞罰) 대체로 상을 주면 사람들이 좋아하니 군주께서 손수 시행하시고, 처벌을 받으면 사람들이 싫어하니 신이 담당하겠습니다.(夫賞賜讓與者 人之所好, 刑罰殺戮者 人之所惡) <한비자 이병 편>

평공은 신하가 자청해서 악역(惡役)을 맡겠다고 하니 흔쾌히 허락했다. 그러나 자한의 제안에는 누구도 모르는 역모(逆謀)가 숨어 있었다. 일 년이 지나면서 '상을 주는 병'보다 '벌을 주는 병'이 더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 아닌가? '처벌'을 피해야 하니 백성들은 당연히 자한을 두려워하고 따르지 않겠는가? 자한이 정하는 '처벌'은 정당성이 없고 제멋대로였지만, 백성은 목숨이 자한의 손에 달렸으니 자한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상과 벌을 나눠 시행한 지 1년이 지났다. 자한은 군주를 축출했고 정권을 독점했다.(居期年 子罕逐其君而尊其政) 자한은 두 개 '병'을 포획하면서 평공을 몰아내고(尸解說), 집권병(執權柄). 집권에 성공했다.

한비자는 군주의 포상과 처벌의 힘을 '이병(二柄)'이라 했다. 군주는 이병을 독점(獨占) 해야 실세(實勢)를 얻고 나라 통치가 가능하다고 한비자는 역설했다. 하지만 평공은 자한의 교묘한 꾐에 넘어가 하나의 '병'마저 놓쳐버렸다. 권력이 달린 자루를 빼앗긴 셈이다.

'대권'이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건너오면서 개나 소나 남발(濫發)과 남용(濫用)하는 용어가 됐다.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인물도 안 되면서 감히 하늘이 내려 보고 있는데도 '하늘의 권병'을 쥐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부응하는 미디어도 문제다. 누가 대통령에 출마할 기미만 보이면 '000 대권에 도전'이라고 마구 써댄다. 어찌 보면 미디어가 특정인을 마치 천자처럼 대변하는 등 대권 용어를 조장하고 있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YTN 충청본부장

21세기에 절대군주 시대의 용어 사용은 정치가 절대군주 시대의 정치를 머물렀음을 방증한다. 집병하면 백성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을 가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겁 없이 천자라도 되어 보겠다는 말인가? 정치, 사회 제도가 대권을 포획하겠다는 의지를 남발하도록 방관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집병 패거리의 교묘한 사탕발림에 속고 속아 이젠 저항마저 포기하는 백성이 많다는 것은 더욱더 문제다. 수신제가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했다. 제 몸 하나 건수 하지 못하는 인간이 천하를 다스리겠다고…. 이런 것들이 우글거리니 나라가 이 모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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