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백선엽 장군이 얼마 전 타계하였다. 그의 사망 전부터 안장처에 대하여 논란이 많았다.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공이 크니 국립현충원에 안장하여야 한다는 의견에 대하여 그가 간도특설대에서 독립군을 토벌한 친일 전력을 이유로 현충원에 안장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맞섰다. 이와 같은 논란 와중에 백장군은 고인이 되었다. 정부는 보수진영의 의견에 따라 대전에 있는 국립현충원에 그의 유해를 안장하기로 하였다.

백장군 사망 직전 성추행 혐의로 경찰수사를 앞둔 박원순 서울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다. 전혀 다른 인생 궤적을 가진 두 인물의 죽음을 두고 언론은 앞다투어 두 사람의 장례방식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도를 하고 유력 인사들도 장례절차 및 조문에 대한 의견을 표함으로써 자신의 성향을 드러냈다. 곡절 많았던 근현대사를 전혀 다른 궤적으로 살아온 두 거물이 비슷한 시기에 사망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평가는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

누군가의 죽음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소비하려 하는 것은 매우 사악한 계산이다. 이를 통해 누군가의 역사관과 정치의식을 평가하고자 하는 경향도 감지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사람을 수단으로 삼지 말고, 항상 목적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칸트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 사회가 개인의 역사의식과 국가관 정치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타인의 죽음을 수단삼는 정도의 성숙도를 가졌음을 드러낸 것으로서 매우 부끄럽다.

내가 나의 선명성을 스스로 드러내고자 근현대사의 굴곡을 드라마틱하게 살아온 이들의 죽음에 어떤 감상이 있음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표현의 자유 영역이므로 누구도 상관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적과 동지를 구별하기 위해 두 죽음에 대한 평가를 남에게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다. 또한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수만 가지 감상과 그 이유가 있음에도 형식만을 가지고 피아를 나누고자 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태도이기도 하다.

필자는 우연히 박원순 시장의 사망 직후 서울시청 근처를 방문할 계획을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근처에 간 김에 대한민국 진보역사에 한 획을 그은 분의 장례식이기에 들러보았는데, 이를 근거로 필자가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얼치기 빨갱이여서 가까이 할 수 없다고 평가하는 것은 넌센스가 아닌가?

우리나라는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고 천명하고 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현충(顯忠)은 "충렬을 높이 드러낸다"이라는 뜻이고, 충렬(忠烈)은 "충성스러운 열사"를 의미한다. 따라서 현충원에는 임시정부로부터 이어온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스런 열사의 뜻을 높이 드러낸 분들이 안장될 것으로 여겨진다.

백선엽 장군은 그의 회고록에서 간도특설대에서의 독립군 토벌은 군인으로서 어쩔 수 없었다며 담담히 말한다. 후일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고 하더라도 독립군을 일제의 군인으로서 일제 충성하며 탄압하였던 그를 독립운동의 법통을 이은 대한민국의 "현충"원에 모시지 않는(혹은 못하는) 것이 현충원의 명실상부함을 증명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백선엽 장군이 독립군을 토벌하였으나 이후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공을 세웠으니 현충원에 안장하여야 한다는 논리는 일본의 극우정치인들의 논리와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 우리나라는 45년 식민수탈을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대하여 끊임없이 사과를 요구하지만, 일본 정부는 해방이후 각종 배상과 차관으로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도움을 줬으니 더 이상 우리나라에게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현충탑에는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현충원은 국군묘지로 시작되기는 하였으나, 현재는 단순한 국립묘지 혹은 국군묘지가 아니라 국립"현충"원으로 정식으로 개명하여 대한민국의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다짐하는 상징적인 공간이 되었다.

권택인 변호사
권택인 변호사

백장군 현충원 안장은 담담한 가해자와 가슴저린 피해자를 한곳에 안장하는 것이다. 이는 자연적 정의에도 반하는 것이고, 백장군 죽음을 자기 이익으로 소비하고자 하는 사악한 계산의 또다른 폐해일 수도 있다. 현충원 안장 외에도 개인으로 극복하기 힘들었던 굴곡진 역사속에서 태어난 전쟁영웅을 추모할 다른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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