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서니 비가 그쳤다. 올려다 본 흐린 하늘엔 점점이 먹구름이 머물러 있다. 흐릿한 하늘처럼 마음이 애매하고 우울하다. 장마철 하늘이 그렇지, 비가 내려야 나무와 곡식들이 튼실하게 자랄 것 아닌가. 언론에 나오는 청년들 처지가 떠오른다. 정해진 것은 없고 불안하기만 하단다. 모든 게 불확실하고 흐릿할 뿐이다.

내 청소년기가 생각난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밤늦게야 오는 생활이었다. 고교시절 3년은 공부가 모든 것이었다. 공부만 잘하면 행복할 것 같았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어른들은 별 일 아니라지만 내게는 해결해야 할 그 시기의 과제들이 있었다. 나름 한다고 하는데 늘 남들보다 뒤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느 대학에 가고 무슨 직업으로 평생을 살아야 하나, 불확실한 나날이었다. 그때 주변에서는 그런 나를 부러워하는 듯도 했다.

20대의 내 모습은 더욱 불안했다. 부실한 육체도 말썽 부리지 않고 학교 분위기는 적당히 놀아도 되었지만 난 놀 줄도 모르는데 세월은 흐르고 있었다. 배우는 바에 정붙이지 못하고 어울리지 않는 공부를 어쭙잖게 하고 있었다. 차라리 인생이 무엇인가 하는 고민이라도 제대로 해봤어야 하는데…. 내 삶의 하늘은 20대에 잔뜩 흐렸다. 그때도 몇은 잘 될 거라고 했다.

30대의 나는 혼란을 겪고 있었다. 토대는 불안했고 현실은 예상과 같지 않았다. 바람 가득 든 풍선처럼 혼자서 상당하다고 착각했지만 현실은 조용히 그것을 부정했다. 기대와 일치하는 것은 없었고 바닥에 발 딛고 있지 않은 것은 허상이었다. 내가 삶의 실기는 물론 이론도 약하다는 것을 알았다. 현실은 정확히 입력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 컴퓨터 같았고 내 답은 늘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그때도 사람들은 내게 잘 될 거라고 했다.

40~50대의 나는 현실이 버거웠고 자신감을 잃었다. 세상은 어둡고 흐릿했다. 남들도 무시당하기 싫어 사실을 감추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새로운 일을 시도했지만 지쳐가기만 할뿐 탈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한창 성장하고 있었고 필요한 것들을 해주지 못했다. 난 무능했고 자존심을 지킬 수 없었다. 그때도 주변에서는 남들 눈치 안보고 잘 하고 있으며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내 삶은 60대 중반으로 가고 있다. 거둘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 겉으로 당당한 척하고 있지만 앞날이 걱정이다. 같이 출발했던 친구들이 직장이라는 장거리 경주의 결승점을 속속 통과하고 있다. 나는 그들이 부럽고 그들은 더 달릴 과정이 있는 나를 부러워 할 게다. 물어보지 않았지만 친구들도 이뤄놓은 일이 별 것 없다고 말하지 싶다.

이젠 주변에서 무슨 걱정거리가 있느냐고 한다. 자녀들 다 성장했고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파왔으니 만족하지 않느냐 물으리라. 요즘 내 하늘은 내 남은 날들처럼 여전히 흐릿하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걸어온 발자국을 돌아본다. 좁고 희미한 흔적들, 어떤 구간은 그것마저 이미 사라져 아무 표시가 없다. 지금도 주변의 몇 사람은 말한다. 나처럼 살고 싶다고…. 부슬비 내리는 산책길은 반이나 남았고 하늘은 여전히 흐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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