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장마철이다. 하늘은 빠르게 이동하는 성난 구름으로 가득 차있다. 가끔 구름사이로 파란하늘이 언뜻언뜻 보인다. 그 사이로 갑자기 비쳤다 사라지는 햇살도 왠지 영화 속 그래픽 같다. 갑자기 창밖이 하얗게 보일정도로 쏴하고 내리는 빗줄기도 예사롭지 않다. 이번 폭우로 이재민도 많이 생겼다 하여 걱정도 되기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를 좋아한다. 뜨거워진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물기를 머문 공기가 하늘에 머물다가 구름을 이루고 그 비가 뭉쳐져서 빗방울이 되어 땅에 떨어진다는 원리를 과학시간에 배웠지만 아직도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설레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비가 내리면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에서처럼 시골 소년과 도시 소녀의 순수한 사랑이 어디선가 생겨날 것만 같다.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면 음악이 흐르는 카페를 초코릿색으로 빗방울 비추는 가로등불은 보라색 물감으로 칠하는 동화같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장마철이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큰 비가 내릴 때면 일부러 밖으로 나가서 비를 흠뻑 맞고 옷이 몸에 완전히 달라붙을 정도로 젖어서 돌아오는 것을 즐길 정도로 비를 좋아했으니 줄기차게 비내리는 장마철을 오죽 좋아할까.

생각해보면 그다지 낭만과 거리가 먼 필자가 비를 좋아하게 된 것은 어린 시절 경험에서 비롯된 듯하다. 개구쟁이 신발은 항상 낡아있어 비가 오면 물이 들어왔고, 들고나가면 우산을 잃어버리는 건망증 탓에 비가 오면 항상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을 수밖에 없었다.

비오는 날이면 비에 적셔진 작은 몸뚱이의 필자가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께서 깨끗이 씻어주시고, 뽀송뽀송한 옷으로 갈아입혀 주시고, 날궂이 음식으로 주린 배를 채워주셨던 따뜻했던 기억이 필자가 비를 즐겁게 받아드리게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결국 필자는 비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 비를 겪고 난 이후의 반전 상황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비행기를 타고 먼 여행을 갈 때도 비가 와준다면 오히려 금상첨화로 받아들인다. 비행기가 추적추적 비내리는 활주로를 달린다. 아무래도 기상상황 탓인지 본 궤도에 오르기까지 비행기는 평소보다 더 흔들린다. 창밖으로도 빠르게 지나가는 구름만 보일 뿐 평소같은 지상풍경을 보여주지 않는다. 왠지 불안하다.

하지만 이내 구름을 뽁~하고 뚫고 올라가서 만나는 파란하늘. 불안감으로 가라앉았던 마음만큼 하늘이 더 푸르러 보인다. 비는 이렇게 급작스런 반전을 보여주는 힘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맑은 날 평탄하게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 보다 비오는 날 비행이 훨씬 더 큰 감동을 준다.

평탄하지 못한 과정을 거친 이후에 평온함을 되찾는다는 점에서 비는 재판과 비슷한 느낌이 있다. 패소하면 이번 비로인한 피해처럼 상처가 매우 크지만 정의의 편에 있던 당사자는 결국 재판을 통해 원래의 내 권리를 찾거나 무고함을 밝혀 평온함을 되찾는다.

결국 원래 내 권리, 원래 내 무죄를 고단한 재판을 통해 확인한 것에 불과하지만 당연한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갑자기 비가 내려 내 몸을 적셨기 때문에 보금자리를 더 따스하게 느끼게 만든다는 것, 비가 준 불안이 원래 파랗던 하늘을 더 파랗게 느껴지게 만드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권택인 변호사
권택인 변호사

필자는 의뢰인에게 재판은 평온에 이르는 길에 만난 비와 같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마침 장마철이니 지금 하얗게 내리는 비를 흠뻑 맞고 들어와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뽀송한 옷으로 갈아입고 커피한잔 해보시라고, 지금 재판이 끝나고 나면 당연하게 여겨졌던 일상이 더 행복해 질 것이라고, 조금만 힘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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