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난영 수필가

산 입구부터 분홍, 노랑, 파란, 하얗게 핀 야생화 군락이다. 분홍이질풀, 노란 물양지꽃, 초롱꽃, 슬픈 전설을 가진 동자꽃 등이 고운 미소로 반긴다. 산들바람에 일렁이는 꽃들의 향연에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눈길 가는 곳마다 한 폭의 수채화이다.

30분 정도 오르니 첫 번째 목표인 금대봉에 도착하였다. 오랜만의 등반이라 겁을 먹었는데 산 중턱에서 하차한 데다 아름다운 야생화와 함께하니 발걸음이 가벼웠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자신감이 붙었다.

오늘의 등반코스는 두문동재-금대봉-고목나무샘-분주령-대덕산-검룡소다. 금대봉에서 고목나무샘으로 가야 하는데 일행들이 청초한 야생화의 매력에 빠져드니 누군가가 금대봉 바로 옆에 있는 우암산에 가서 야생화를 더 보고 가자고 한다.

우암산으로 가는 길은 말 그대로 천상의 화원이다. 기린초의 노란 별들이 반짝거리고, 화려한 분홍빛의 노루오줌, 보랏빛 하늘색의 잔대, 헌칠한 키의 마타리, 고고한 자태의 큰제비고깔, 하늘나리, 물봉선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야생화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도시에서 지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다채로운 야생화의 향연이 어찌나 신비롭고 영롱한지 숲의 정령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 싱그러운 여름 향기 가득한 천상의 화원에서 이름 모를 꽃들과 숨바꼭질하며 걷노라니 신선이 된듯하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꽃향기에 너무 취했나. 그만 길을 잃었다. 우암산에서 고목나무샘, 분주령을 가려면 오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지만,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지름길을 택했는데 중간에서 길이 없어졌다.

선두에서 길을 찾으려고 애를 쓰나 쉽지 않은듯하다. 한참을 헤매다 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다. 쉬이 길이 나올 것 같지 않으니 점심을 먹고 가자고 한다. 적당한 운동과 은은한 꽃향기, 향긋한 산 내음이 함께하는 점심은 꿀맛이다. 후식으로 과일과 냉커피까지 가지고 오신 분이 있어 신선이 부럽지 않았다.

길을 잃은 것도 잊어버리고 들꽃의 향연에 넋을 놓으니 늡늡한 산악 대장이 내려갈 길이 걱정되니 서두르란다. 길이 없어 만들어 내려가는 만큼 떨어지지 않게 바짝 따라붙어야 한단다. 다리가 시원찮은 나는 오래 걸을 수가 없어 걱정되기 시작했다.

숲이 다옥해 조금만 방심하면 앞사람이 보이지 않아 미아 되기에 십상이다. 이름 모를 야생화가 발길을 부여잡아도 마음이 조급해 눈길을 줄 수 없다. 간신히 임도까지 내려왔으나 목적지가 아니란다. 다리를 끌며 내려왔는데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내려와야 한다니 눈앞이 캄캄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통증을 참아가며 쫓아갔다. 아뿔싸, 내려왔던 길도 찾지 못해 계곡으로 올라간다. 여름내 잦은 비로 계곡의 돌마다 이끼가 끼어있어 조금만 방심하면 미끄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양쪽 스틱에 잔뜩 힘을 주었더니 어깨까지 뻐근하다.

오르락내리락 날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길은 나오지 않는다. 일행들에게 피해 줄까 봐 불안하니 진땀이 바작바작 나고, 배까지 아파진다. 천신만고 끝에 목적지 주변 임도까지 무사히 내려왔다. 감사한 마음에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차에 오르자 좀 전까지의 두려움과 공포는 사라지고, 천상의 화원에서 만난 야생화만 아른거린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라는 속담을 실감했지만, 옛날 동료들과 돈독한 정을 나누고, 아름다운 추억을 쌓는 뜻깊은 하루였다.
 

 

이난영 수필가
이난영 수필가

# 약력
▶2000년 1월 한맥문학으로 등단
▶충북수필문학회, 청주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청풍문학 회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제 27대 문인저작권옹호위원회 위원 ▶충청북도교육청 재무과장으로 정년퇴직
▶2000년 전국공무원문학협회 공모 수필당선, 2019년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난을 기르며', ' 행복 부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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