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김윤희 수필가

별일이다. 참으로 별일이 다 많다.

'입 좀 다물고 살라' 말 많은 세상에 마스크를 씌운다. '아웅다웅 그만들 싸우라' 사람들끼리 일정 거리를 두게 한다. 무슨 조홧속인가.

감히 인간 세상을 넘보지 못하던 미물이 몸을 뒤틀며 꿈틀꿈틀 변이를 일으키더니 같이 살자 달라붙는다. 코로나19라는 신종바이러스다. 녀석들이 인간 세상에 침투하면서부터 평범한 일상생활이 흐트러지고 있다. 만화 영화에 나올 법한 일이 현실로 나타난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다. 언제 어디에서 놈들이 치고 들어올지 모른다. 앙큼하게 몸을 숨기고 있다가 틈만 나면 스며든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을 겪어낸 어르신들도 이런 일은 처음이란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헐벗고 굶주림의 고통이 아무리 컸어도 서로 살 비비고 보듬으며 온기로 이겨내지 않았던가.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의 일 일진데 녀석들은 기어이 사람 사이를 떼어놓는다. 함부로 나돌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다.

내 어릴 적의 그리움이 머무는 곳, 진천문학관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고요가 머문다. 잊혀져 가던 아픔이 아릿하게 되살아난다.

제1회 졸업장을 안겨줬던 백곡중학교, 2012년 아홉 명의 졸업생을 끝으로 더 이상 찾아올 아이들이 없다는 이유로 문을 닫은 학교 아니던가. 폐교! 그 아픔을 딛고 문향이 머무는 곳으로 새 삶은 찾은 곳이다. 이후 한 해 수 천 명의 학생들이 몰려들어 웃음소리 왁자하더니 또다시 숨소리가 잦아든다.

그렇게 솔숲 바람만이 가랑가랑 푸른 숨을 토해내고 있을 때다. 여름방학 토요 프로그램을 아주 조심조심 열었다. '사진으로 쓰는 가족문집' 만들기다. 작년에 이어 세 번째다. 햇살 짱짱하던 7월, 모두 여섯 가족이 참여했다. 10명을 넘지 않도록 두 교실로 세 가족씩 나누어 진행했다.

엄마 아빠, 자녀가 모두 마스크를 쓰고 가족사진을 들여다본다. 사진을 소재로 마음을 나누며 이야기를 엮어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서로에게 바치는 마음속 언어를 통해 도톰도톰 쌓여가는 가족애를 본다. 조용하면서도 사랑이 넘친다. 따뜻한 눈빛으로 오가는 대화가 정겹고, 그 자체가 아름다운 또 하나의 풍경이 된다. 부모와 자녀는 서로에게 해바라기이다. 해를 보려고 안타깝게 발돋움하는.

강사도, 수강생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단단히 무장을 했다. 두 눈만 빠끔히 내놓은 모습으로 수업하는 풍경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그래도 '해바라기'란 이름으로 가족문집 제3집을 엮어냈다. 밝고 환하다.

진천문학관 15인 작가 중 오장환 선생의 '해바라기'에서 제목을 차용했다. 해바라기는 그리움이다. 오장환 선생의 해바라기는 조국 광복을 보려고 키를 키웠을 테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저 마스크 없이 얼굴 맞대고 웃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픈 거다.

그 소박한 그리움을 마음에 담고 조심스레 4집 준비에 들어갔다. 1회 차 수업을 마치자 이번에는 그 마저도 허락 못 하겠다는 듯, 전국적으로 코로나 확진자가 는다. 공공기관, 시설이 폐쇄됐다. 각자 집에서 화상 수업 하는 시대를 맞는다.

김윤희 수필가
김윤희 수필가

신문명과의 접신이다. 조금, 조금만 하던 기다림이 길어진다. 봄, 여름을 지나 벌써 9월이다. 풀벌레 소리가 선들바람을 타고 옥타브 올린다.

화상으로 진행될 가족문집, 제4집은 '고추잠자리'다. 고추잠자리가 무리 지어 나는 꿈을 꾸면, 귀한 사람을 만나 좋은 일이 생긴다는 그 말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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