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대신 소통 한뜻… 희망 실현 주민자치

월평둥지사회적협동조합의 구성원들. 사진 왼쪽부터 권여옥 팀장, 신영길 대표, 임재홍 주민자치위원장, 문성남 팀원, 김대승 이사장. / 김정미
월평둥지사회적협동조합의 구성원들. 사진 왼쪽부터 권여옥 팀장, 신영길 대표, 임재홍 주민자치위원장, 문성남 팀원, 김대승 이사장. / 김정미

[중부매일 김정미 기자] 대전광역시 서구 월평동에는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통하는 주민공유공간이 있다. 월평둥지. 2018년 마을을 따뜻한 공동체로 되살리기 위해 뜻을 모은 주민들이 마련한 공간이다. 관계를 만들고 소통을 이어가는데서 나아가 마을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이 머무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도전에 나서고 있다. 마을 회의를 통해 재능을 나누고, 배움터를 만들며 건강한 마을 만들기에 나선 월평둥지사회적협동조합 구성원들을 만났다. / 편집자

 

도전은 싸움에서 시작되고

월평동 마을주민 월간 반상회. 주민간 자발적인 교류 기회를 제공. 지역문제를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면서 서로 돕는 시간을 가짐.
월평동 마을주민 월간 반상회. 주민간 자발적인 교류 기회를 제공. 지역문제를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면서 서로 돕는 시간을 가짐.

월평둥지사회적협동조합 김대승 이사장의 또 다른 이름은 '월평1동 장외발매소 폐쇄 대책위원회' 위원장이다. 1999년 7월 교통 편리하고 쾌적했던 월평동에 마사회 장외발매소가 입점한 이후 마을은 빠른 속도로 변해갔다.

즐비했던 학원은 화상경마장 운영 6개월 만에 자취를 감췄고, 지금도 월평1동에선 미술학원과 피아노 학원을 찾아보기 어렵다.

장외발매소 직선거리 50미터 거리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는 김대승 이사장은 아이들과 학원이 떠나는 모습을 보며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 "월평동의 미래를 위해 도심 속에 사행성 도박장이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계룡건설이 마사회에 건물을 매각하고 인근에 있던 도시개발공사도 이전을 하면서 지역경제는 말할 수 없이 위축됐다. 화상경마장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김대승 이사장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마권장외발매소는 빈곤도박입니다. 호주머니에 돈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궁핍해 보이는 사람들이 하루에 평균 75만원을 잃고 갑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더 곤경에 빠뜨리는 이 사업을 공기업이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본격적인 싸움은 마권장외발매소 확장 공사 소식을 접한 2013부터 시작됐다.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마권장외발매소 폐쇄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이익을 보는 주민들과의 반목은 불가피했다.

임재홍 월평1동주민자치위원장은 갈등하는 주민들을 결집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5개 노인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대책위 활동의 정당성을 꾸준히 설득한 끝에 갈등을 봉합할 수 있었다.

12개 자생단체와 주민들이 대책위를 구성하고 마사회 폐쇄 및 이전을 강력하게 촉구하면서 지루한 싸움은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된다. 2021년 1분기 내 폐쇄. 현재 마권장외발매소는 코로나19로 인해 휴장을 하고 있는 상황. 폐쇄까지 재개장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보인다. 월평1동의 주민 수는 1만1천100명 정도. 대책위원회는 더 많은 주민들이 월평동으로 이주할 미래를 기대하고 있다.

 

황폐해진 마을을 되살려보자

마을 멘토단 양성 및 마을학교 운영. 마을학교를 운영하며 마을공동체 활동 경험과 단계적 학습을 통해 마을멘토 양성. 기초·심화교육 진행.
마을 멘토단 양성 및 마을학교 운영. 마을학교를 운영하며 마을공동체 활동 경험과 단계적 학습을 통해 마을멘토 양성. 기초·심화교육 진행.

월평동 주민들은 2015년 제정된 '대전광역시 마권장외발매소 주변지역 지원조례'에 따라 2016년부터 장학사업과 마을공동체 활성화사업을 펼치고 있다.

사업을 하며 주민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공간 필요성이 커졌다. 김대승 이사장이 보증금을 마련하고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아 마련한 공간이 지금의 주민공유공간 월평둥지다. 월평둥지라는 이름도 주민공모를 통해 정했다.

2019년 2월 9일 월평동에서 사랑방 마을회의를 진행하고 딱 한 달 후인 3월 9일 현판식을 가졌다. 마을회의에는 150명이 넘는 주민들이 참여하며 열띤 관심을 보였다.

2016년부터 마을공동체 활동에 참여했던 신영길 새뜸문화예술회 대표는 공동체 사업이 윤활유가 되어 주민들이 결집하고 함께 마을의 미래를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취미활동을 같이 하고 생각을 나누다보니 우리가 사는 마을을 보다 쾌적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문화가 있는 마을, 특색 있는 마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을축제도 시작했죠."

1년에 한번 월평1동에서는 화합한마당이 열린다. 누가 이웃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각박한 도시 생활이라지만 월평1동의 풍경은 조금 다르다. 마을 반상회를 통해 이웃을 만난 주민들은 마을의 미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권여옥 대전시사회적자본지원센터 월평마을공동체지원팀 팀장은 월평동의 마을반상회를 여느 마을 반상회처럼 생각하면 곤란하다고 귀띔했다. 2016년부터 시작된 '월평동 반상회'는 행정적인 업무를 공유하는 반상회라기보다 주민 소통의 장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희망 만들기는 이제부터 시작

공방 프리마켓 활성화. 월평동 지역화폐 추진 관계자 간 협력적 네트워크를 프리마켓 사업과 연계해 공예골목, 지역 상권 활성화.
공방 프리마켓 활성화. 월평동 지역화폐 추진 관계자 간 협력적 네트워크를 프리마켓 사업과 연계해 공예골목, 지역 상권 활성화.

마을자치와 주민자치를 꿈꾸며 이웃들이 첫 걸음을 뗀 것이 사회적협동조합이다. 공공성과 공익성을 바탕으로 지역사회 환원에 초점을 맞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첫 과제는 공간 자립. 최소한의 수익사업을 계획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주민들은 마사회가 떠난 이후를 고민하고 있다.

학원도 복지시설도 없는 마을. 월평동엔 마을 어르신들이 쉬고 운동할 수 있는 시설도 마땅치 않다. 마사회가 떠나고 나면 공간을 마을에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월평1동 장외발매소 폐쇄 대책위원회'는 해산하지 않았다. 싸움도 도전도 현재진행형이다. 김대승 이사장은 월평둥지사회적협동조합이 마을의 희망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월평둥지의 성장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신영길 대표가 꿈꾸는 역사문화자원의 지킴이가 될 수도 있고, 권여옥 팀장이 그랬듯 주민들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도 있으며, 문성남 팀원이 기대하는 삶의 터전이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건 주민들이 함께 꿈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던 1993년 월평동으로 이주한 김대승 이사장에게나, 1995년과 1997년 이주한 임재홍 주민자치위원장과 신영길 대표에게나 2003년과 2008년 월평동에 깃든 문성남 팀원과 권여옥 팀장 모두에게 월평동은 이제 '우리마을'이 됐고, '함께 그리는 미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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