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코로나 때문에 교복을 입지 못해 애태우고, BTS의 댄스를 커버해 멋들어지게 보여주는 조카는 올해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이다. 이 아이에겐 초등학생 남동생도 있고, 6살 난 사촌 동생도 있지만, 우리 집안 서열 꼴찌다. 엄마 산소에 마련된 상석에 그 아이의 이름이 맨 뒤에 있어서다. 그녀의 엄마도, 이모인 나도 그 아이의 이름이 가장 마지막에 있는 것을 보면서 웃어넘기고 놀리기까지 했다. 집안 서열 꼴찌가 심부름을 해야 한다면서.

지금 생각하니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그것이 성차별인 줄 몰랐다. 평등을 연구하고 가르치면서도 나와 내 어여쁜 조카딸에게 일어난 그 일이 차별이라는 생각을 7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희미하지만 상석이 올려지던 날 우린 그 문제를 인지하고 이야기를 나누긴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 영문을 모르고 당한 조카만 억울했지 싶다.

이런 감수성으로 나는 얼마 전까지 여성가족부 성별영향평가 컨설팅 위원으로 활동도 했었다. 부끄럽다. 그나마도 이 잘못을 깨닫게 된 건 며칠 전 우연히 읽게 된 칼럼 덕이다. 치매에 걸린 구순 할머니를 주로 돌봤던 손녀와 어머니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장례식에서 상주 역할을 할 수 없었던 일, 역시 가족들 맨 마지막에 이름이 적히게 된 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다툼이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글을 읽는 순간 엄마 산소의 상석에 적힌 이름 순서가 생각났다. 딸 셋을 내리 낳고 아들을 마지막에 얻으신 엄마는 아들 덕분에 시집살이가 좀 줄었다고 했다. 그래서 더 귀한 아들이었고 돌아가시는 날까지 아들 앞으로만 무엇을 남겨놓기까지 하셨다. 그래도 원망하지 않았고 그래서 아들 이름이 먼저 들어가도 억울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그런데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엄마는 그랬어도 나는 내 딸아이의 이름이 이유 없이 남동생보다 뒤에 실리게 두지 말았어야 했다. 별일 아니라 여기겠지만 그렇게 생각과 관습은 이어져 내려간다. 그래서 문제임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을 그냥 넘기지 않고 해결해 가야 하는 것이다. 상석을 다시 세울 수 없으니 다음에 성묘를 하러 가면 딸아이에게 이 사실을 설명해 주고 사과해야겠다. 유교적 사상이 지배하는 잘못된 관습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바로잡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이다.

이제 우리 세대는 매장도 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후손들의 순서를 성별로 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순서 자체를 중요시하지 않게 될 것이다. 나이가 적고 많다는 것에, 남자와 여자라는 것에 차별을 두고 순위를 매겨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인지하고도 변화하지 않고 계속 과거를 고집하는 한 미래를 추구하려는 세대와의 충돌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성인지 감수성은 인지만을 말하지 않는다. 인지 후 이를 시정하고 바꾸려는 태도가 포함되어야 한다.

이번 추석 시댁은 차례를 지내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차례와 제사를 지내지 말자는 어머님의 선언 덕분이었다. 평생 1년에 5번의 기제사와 2번의 차례를 정성껏 지내오신 여든 중반의 어머님은 그동안 최선을 다했으니 됐다며 자손들에게 앞으로 제사와 차례를 지내지 말라고 하셨다. 그동안에도 상차림에 별 기여가 없던 솜씨 없는 며느리는 반갑기만 했다. 어머님의 선언으로 이제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몇 해 전부터 어머님은 명절에 나를 친정으로 보내셨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며 친정행을 명하신 이유가 '성인지 감수성' 때문이었을 리 없다. 그렇지만 그녀의 마음 씀엔 이미 감수성이 넘쳤다. 그런 어머님 아래 며느리여서 행복하다. 상대가 누구든 배려하고 먼저 베풀면 된다. 굳이 따지지 말자. 나이가, 성별이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장례든 혼사든, 그동안 왜 그런지 의심도 하지 않았던 전통들이 잘못된 관습이라 알게 됐다면 지금부터 바꿔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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