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초문화재단, 미호천 명칭 복원 추진 토론회

[중부매일 이지효 기자] 운초문화재단(이사장 류귀현)은 창립 5주년 기념사업으로 까치내문화예술회와 일제 강점기에 강등돼 불려진 미호천의 명칭을 복원하고 강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17일 청주시의회 특별위원회실에서 열린 토론회는 양승직 운초문화재단 이사의 발제에 이어 황경수 청주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좌장을 맡아 충북대 박물관 강민식 선임연구원이 '미호천 명칭 복원의 역사적 당위성'에 대해, 한국교원대 김영래 교수가 '미호천의 지형학적 특성'을 발표했다. 이어 박희두 서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와 김경중 청주국제에코플렉스 관장이 토론을 나눴다.

청주는 미호천을 중심으로 비옥한 충적지가 넓게 펼쳐져 세계 인류문화 발생의 중요한 곳중 하나이며 미호천 유역은 인류가 보전 및 번영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환경과 문화적 지역으로서 선사시대부터 벼농사가 이뤄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소로리 볍씨가 발견되는 등 선조들은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보전해 왔다.

이렇게 강을 품고 발전해온 청주지만 현재 청주에는 '강'이라는 명칭이 없는데서 운초문화재단과 까치내문화예술회는 미호천 명칭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수십번의 현장 방문과 고문헌을 통해 미호천의 유래와 옛 명칭을 조사하던 중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이날 발제를 맡은 양승직 이사는 "미호천의 유래는 고지도나 지명 관련 고서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며 향토사 연구 자료에 의해하면 미호의 어원은 조치원읍 연동면 예양리 미곶(彌串, 미꾸지)에서 유래된 것으로 미곶천/미호천/미호천(彌串川/尾湖川/美湖川) 등으로 불리어 오던 것을 일제강점기 민족정기 말살정책에 따라 1914년 이후 미호천(美湖川)으로 통일돼 부르게 된 것"이라며 "1923년 일제가 발행한 조선지는도에 까치내 상류를 미호천으로 표기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이사는 "미호천과 관련된 역사적 자료 대동지지에는 작천은 서북쪽 20리에 있는 번탄에서 서남방향으로 오근진, 작천, 진목탄, 망천, 부탄을 거쳐 흐르며 연기의 동진강에 이른다고 돼있다"고 했다.

미호천과 만나는 동네 이름도 강이 합쳐지는 곳이라 해서 합강리로 전해지고 있다.
미호천과 만나는 동네 이름도 강이 합쳐지는 곳이라 해서 합강리로 전해지고 있다.

발표에 따르면 19세기에 간행된 청주읍지에서 '작천은 고을의 북쪽 20리에 있다 각각 물줄기의 맥은 진천, 청안, 괴산, 회인의 경계에서 나와 작천에 합류한다. 상류는 오근진이 되고 하류는 진목탄이 돼 연기 경계인 동진에 닿는다'고 돼있다.

조선 후기에 발간된 해동역사 속집 제14권 지리고의 기록을 보면 '동진강은 망이산으로 부터 나와 남쪽으로 흘러 진천현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연기현의 남쪽에 이르러 금강으로 들어간다'고 기록돼 있다.

동국여지승람 에는 동진(東津) 그 근원이 셋이니 "하나는 진천 두타산이오, 하나는 청주 적현이며, 하나는 전의에서 나오는데 남으로 흘러 공주의 금강으로 들어간다"고 기록돼 있으며, 1872년 연기현 지도는 미호천을 동진강으로 표기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전인 1882년 일본에서 발행된 조선전도에도 미호천이 동진강으로 표기돼 있으며, 중보문헌비고(1903~1908)에도 금강 지류로 동진강이라 하여 1900년 전후로 미호천을 동진강으로 기록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강민식 선임연구원도 "미호천에 대한 통일된 지명은 191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정착했다"며 "이것은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정책으로부터 비롯한 것으로 그 이전 20세기 초부터 동진강(東津江)이 대표지명으로 사용된 예도 있다"고 정리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하천의 대표 명칭은 하천 수계 중심 고을의 하천명을 수용한 경우, 하천의 주요 기점을 차용한 경우로 나눌 수 있는 반면 미호천은 적어도 1912년까지 작천(鵲川)이 대표 지명이었고, 미호천으로 바꿔 부른 연유는 분명치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획일화된 하천 명칭을 오늘날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행정의 편의 등 여러가지 이점이 적지 않으나, 전통성 회복이라는 측면, 하천 명칭의 통일은 일제강점기의 식민정책과도 무관하지 않다"며 "지명 선정의 당위성은 물론이며 과연 지역 대표성과 확장성을 가졌는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박희두 명예교수는 "조선시대의 행정구역 명칭을 보면 옥산면 등에서 미호천을 건너는 다리를 기준으로 강내면(江內面), 강외면(江外面), 북강내면(北江內面), 북강외면(北江外面)으로 명명해 구분을 했으며 강내면, 강외면 등의 지명은 현재도 남아있다"며 "세종시에 편입된 연기군 남면의 경우에도 연기 8경중에 '당수청람(唐岫晴嵐)'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곳은 남면 연기리에 있는 당산으로 '구름과 함께 어우러진 당산의 동진강에 비친 모습'이 연기 2경이고 한편 '동진어화(東津漁火)'는 '동진강에서 밤에 물고기를 잡기 위해 환하게 밝힌 횃불'이 연기 6경이라고 한다"고 지명 흔적에 대해 설명했다.

박 명예교수는 "이것들을 종합해 볼때 미호강으로 호칭을 해도 이미 사용하던 동진강의 호칭이 널리 사용된 것으로 보아 작천을 중심으로 한 미호천을 미호강이라 칭해도 무방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경중 청주국제에코콤플렉스 관장도 "2014년 통합청주시 출범 후 세종시가 들어오면서 미호천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아졌다"며 "이를 바탕으로 미호천유역협의회추진협의회가 구성됐고 2017년에는 상생의 미호토피아 선언도 있었다"고 밝혔다.

김 관장은 "여기에는 첫 번째로 미호천을 미호강으로 부를 것을 천명했다"며 "미호는 강(江)이다. 천(川)이 모여 강(江)을 이룬다. 미호강은 이미 마을과 지역을 넘어 진천, 음성, 청주, 세종 등 여러 도시문명을 잉태하고 문화적으로 융합시켜 온 광역적 젖줄"이라고 선언한 이후 청주국제에코콤플렉스 주요 환경교육프로그램 이름도 '미호강 미호종개 환경교육'으로 환경부 인증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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