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김윤희 수필가

'그저 먹고 자라는 것이 삶의 전부는 아닐 거야'

호랑 애벌레는 오랫동안 그늘과 먹이를 제공해 준 나무에서 기어 내려온다. 세상은 온갖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어느 날 꿈틀거리며 치열하게 서로 밀고, 밀리며 올라가는 애벌레 기둥을 만난다.

'그래, 내가 찾으려는 것이 어쩌면 저곳에 있을지도 몰라.'

그는 애벌레 기둥에 합류를 한다. 사방에서 떠밀리고 채이고 밟히며 깨달은 것은 남을 딛고서라도 올라서야 한다는 것이다. 꼭대기를 향해 오르는 것, 그것만이 최대 목표였다.

취업을 위해 나는 서울로 올라갔다. 꿈틀꿈틀 무언가를 향해 분주히 움직이는 무리들, 거대한 애벌레의 기둥이다. 그 무리에 끼어들기 위해 학원을 드나들며 취업 준비를 했다. 드디어 맨 밑바닥에 한 발을 올리며 대열에 합류되었다. 서울지방경찰청 정보과 기록실, 비집고 들어선 나의 일터다. 아침 출근 시간부터 달음박질이다. 지하철이나 시내버스가 수시로 있음에도 모두 종종걸음을 친다. 이에 뒤질세라 덩달아 나도 뛰었다. 때때로 숨이 턱에 차기도 했지만 한참 헐떡이다가 맞는 한 줄기 바람은 상쾌했다. 매력적인 도회의 맛이다.

다행히 나는 주어진 일이 적성에 맞았는지 직장 일이 좋았다. 퇴근 후 배울 거리를 찾아다니며 종종 동숭동을 찾기도 했다. 당시 직장 선배 언니는 신춘문예를 꿈꿨다. 문학을 이해 못하는 남자와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던 그녀는 직장을 그만두고 보따리를 싸서 절로 들어갔다. '문학이 뭐 길래' 글을 쓰기 위해 정년이 보장된 직장을 버리나 쉽게 수긍이 가질 않았다.

꽃들에게 희망을
꽃들에게 희망을

애벌레 기둥을 오르던 호랑 애벌레는 자신이 밟고 올라선 노랑 애벌레의 슬픈 눈빛을 본다. 순간 둘은 꼭대기에 오르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애벌레 기둥에서 빠져나온다. 함께 풀밭으로 기어 나와 그들만의 행복을 찾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또다시 꿈을 좇아 떠나는 호랑 애벌레.

내 나이 서른이 가까워지면서 큰일이 난 듯 부모님의 조바심은 결국 나를 끌어내려 짝을 채워 주셨다. 고향으로 내려왔지만 오랜 시간 떠나 있던 터라 낯설고 무료했다. 바쁘게 내달리던 삶이 갑자기 멎었다. 퇴보하는 듯한 마음에 불안했다. 두 아들을 낳아 키우느라 눈코 뜰 새 없는 생활이 약이 되었는지 주부로서의 삶에 적응이 되면서 평온을 찾았다. 주위가 보인다. 사회 활동을 서서히 시작했다. 옛 직장 동료들과도 만남을 유지하면서 문득문득 그때의 향수에 젖곤 했다. 절로 들어갔던 선배는 스님과 결혼하여 산사의 사람이 되었다.

신춘문예에 연연하던 그녀는 자신을 내려놓았는데, 정작 독자의 자리에서 서성이던 나는 어쭙잖게 등단이라는 팻말을 움켜쥐고 전전긍긍이다. 수필가 대열에 슬그머니 편승하고도 딴짓이었다. 돌아보니 별일을 다 했다. 여성단체 일을 시작으로 초등학교 방과 후 교사, 자원봉사센터장, 군의회 의원. 무엇에 이끌리듯 끌려들어 허우적댔다.

군의원 직을 내려놓고 난 후 우연히 주어진 일이 수필교실이다. 6년째 접어들고 있다. 돌고 돌아 등단한 지 12년 만에 온전히 문학 관련 일을 시작한 셈이다. 편안하다.

김윤희 수필가
김윤희 수필가

꿈을 찾아 떠난 호랑 애벌레는 자신의 몸에 나비가 들어 있다는 걸 믿고 어렵게 노랑 애벌레와 놀던 곳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노랑나비와 함께 호랑나비, 본연의 모습을 찾는다. 나는 무작정 꿈을 좇던 한 마리의 애벌레였다. 언젠가 나도 나비로 날 수 있을까. '꽃들에게 희망을' 노란 책표지에 날아오르는 나비의 날갯짓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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