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영호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명예교수·전 지역신문발전위원장

'남성과 여성은 마치 화성인과 금성인처럼 태생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평생을 함께 산 부부라도 서로를 완전하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여당과 야당의 입장이 너무 틀려서 합의점을 찾기가 어렵다' 위의 두 문장 중 맞는 것은 어떤 것일까?

물론 정답은 전자이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틀리다는 것은 사실이나 이치, 기준, 계산 따위에 어긋나는 것이고(wrong), 다르다는 것은 같지 아니한 것(different)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틀리다는 것의 전제는 정답이나 원칙, 기준이 있다는 것이고, 다르다는 것은 단지 차이가 있을 뿐 옳고 그르거나, 맞고 틀리는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처럼 두 단어의 뜻이 엄연히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구분 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면 '아내 또는 남편하고 성격이 틀려서 부부싸움을 자주 한다'는 식의 표현인데, '다르다'라고 해야 할 표현을 '틀리다'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역의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사소할 수도 있는 단어 하나 사용하는 문제를 가지고 이렇게 장황하게 얘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소통 부재로 인한 갈등의 원인을 이 간단한 표현 속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틀리다'라고 하는 것은 원칙이나 기준에 비추어 어긋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그 원칙이나 기준을 바로 '나' 또는 '내 편'에 두다 보면, 남편(아내)의 기준으로 본 아내(남편)는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으며, 이를 좀 더 확대하여 생각하면 여와 야, 보수와 진보 간에는 입장이나 정책이 다른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틀린 것이 되는 것이다.

틀리다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이기 때문에 바로 잡아야 한다. 도로에서 역주행을 하는 자동차는 다른 차와 주행 방향이 단지 다른 것이 아니라 타인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틀린 행위이기 때문에 바로 잡기 위해 단속과 처벌을 해야 한다. 그러나 다르다는 것은 차이의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한편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기준을 중심으로 끌고 가려고 하면 반드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세상사가 1+1=2와 같이 똑떨어지는 해답이 있거나 밤이 지나면 다시 아침이 찾아오는 자연의 이치처럼 명료한 원칙이 존재한다면 좋겠지만 인간관계, 사회 현상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는 점 때문에 항상 갈등이 존재한다.

내가 나인 것은 남과 다르기 때문이며, 그것이 또한 나의 존재 가치이기도 하다. 사회는 그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하는 다양성의 토대 위에서 성립한 것이기 때문에 크게 보아서 지구 공동체는 70억, 우리나라만 해도 5천만의 다양성이 어우러져 만들어가는 사회이다 보니 크고 작은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그 갈등의 상당 부분이 남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나와 틀리다고 생각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특히 우리 사회가 '다름'을 인정하는 데에 인색하고, '틀림'에 대해 적대시 하는 문화가 유독 극심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지만 인터넷, SNS 등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이 표현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긍정적 방향 보다는 편 가르기, 집단 매도 등의 도구로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일사불란함을 강조하는 가부장적 문화와 일제 치하, 분단, 독재 정권을 겪으면서 하나의 이념만을 교조적으로 신봉하도록 강요받았던 데 대한 반발로 나타난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 그리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정치적 후진성과 지역 갈등 구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 또는 내 편만 옳고 그와 다른 상대는 반드시 꺾어 넘어뜨려야 할 적으로 양분시킨 의식구조가 형성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최근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갈등 이슈인 '추-윤 갈등'도 그 시작은 검찰 개혁이었으나 다름을 인정하는 소통이 없이 틀림이라는 전제 하에 서로가 삿대질을 하며 힘겨루기를 하는 대결 구도만 남게 되어 그 결말은 승리와 패배라는 이분법으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김영호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명예교수·전 지역신문발전위원장
김영호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명예교수·전 지역신문발전위원장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재난을 견디기에도 벅찬데 먹고 살기 고단한 장삼이사 백성들까지도 끌어들여 괜히 목에 핏줄 세우게 만든 유난히 시끄러웠던 한 해도 저물어간다.

'다름'을 '틀림'이라고 강변하는 정치권을 비롯한 목청 큰 집단들의 억지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우리 언어 속에서 잘못 쓰고 있는 표현처럼 틀림은 그들의 일방적 기준일 뿐 다름으로 받아들여, 그 다름 속에서 보다 나은 다름을 찾고 만들어가는 안목을 키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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