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사람] 김정호 청주랜드 진료사육팀장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수의사니 동물을 좋아하시겠어요? '아픈 동물을 진단하고 치료하는걸 좋아합니다'라고 답한다. 질문하신 분의 표정을 보니 기대했던 답은 아니었다. 의사가 된 것이 사람이 좋아서가 아니 듯 동물의사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사람과 다르게 심각한 고통에 이른 경우나 법정전염병이 걸린 동물에게는 안락사도 감행해야하므로 오히려 동물에 대한 감정의 배제가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동물이 마냥 좋았던 때도 있었다. 초등학교때까지 우리집은 시골에 있었다. 제비가 툇마루 처마밑에 집을 지으면 똥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제비집 밑에 받침대를 달아주었다. 집에는 당장 필요없는 물건을 두는 광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거절못하는 아버지가 지인의 부탁으로 사놓고 풀어보지도 않은 책박스들이 쌓여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느날 박스를 열어보니 쥐가 책들을 갉아 만든 푹신한 집을 있었고, 아직 눈도 못뜬 새끼 쥐들이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어린 내눈에는 털없는 쥐들이 추워보였고 품에 안고가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전기밥솥에 신문지를 비벼서 바닥재로 깔고 쥐들을 뉘였다. 이제는 안추울 쥐들을 보니 마음이 흡족했다. 저녁식사 준비를 하시던 어머니의 비명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그랬다. 지붕 기왓속에는 참새들이 자주 들락거렸다. 어느날 마당에 떨어져 있는 새끼 참새 두마리를 발견했다. 벌거벗은 참새들은 다행히 살아있었다.

그 날부터 종이상자에 둥지를 만들어주고 밥풀을 가져와 노란 입을 벌리는 새끼들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끈적이는 밥풀에 목이 메일까봐 손가락으로 물도 찍어 주었다. 참새들은 별탈없이 자랐다. 한달쯤이 지나서는 털이 숭숭나고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짧은 거리를 비행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어 날 기쁘게 했다. 그러던 어느 주말 아침 늑장을 부리며 일어나 늦은 아침을 주기위해 종이상자를 열어보니 참새들이 그만 죽어 있었다. 처음 경험한 죽음이 내 게으름탓인 것 같아 오랫동안 자책했다. 국내 전역에 건물 유리창과 방음벽이 늘어나면서 충돌돼 희생되는 야생 새가 연간 800만마리나 된다고 한다.

우리팀의 윤준헌 주무관이 자신의 집근처 방음벽에도 죽는 새들을 많다고 안타까워 했고, 그것이 계기가 돼 동물원 관람창에 방지 스티커 부착 행사를 가졌다. 지난 11월 14일 날씨 좋은 토요일, 행사에는 녹색연합, 국립생태원, 두꺼비친구들, 청주시의회, 자원봉사 시민들께서 함께 해 주셨다. 가을산에 위치한 동물원에서 정성껏 스티커를 붙이는 사람들의 손은 저마다 고운 단풍이었다.

11월 11일에는 우리팀 직원들과 쥐랑 참새와 살았던 시골집 근처의 바닷가에 갔다. 지나는 길에 보이는 옛 시골집은 오래 전 헐렸고 터만 남아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왠지 아직 있다고 상상하고 싶어 멀리 돌아갔다. 도착한 석문방조제에서 낚시바늘 등 쓰레기를 줏기 시작했다. 갯바위와 방파제 트라이포트에 감겨 있는 낚시줄과 바늘은 잘 빠지지 않아 일부를 남기고 끊어 버릴수 밖에 없었다. 전국의 야생동물구조센터에는 물고기를 먹는 야생조류들이 낚시바늘을 같이 삼켜 구조된다. 쓰레기 중에는 물고기를 양식할 때 쓰는 공처럼 생긴 어구가 많이 있었다. 동물들이 가지고 놀 만큼 튼튼해서 가져간 화물차량에 가득 실었다. 심심한 동물들에게 장난감을 만들어줄 생각에 직원들의 얼굴이 신났다. 행사 사진을 보니 모두들 즐거운 표정들이다.

김정호 진료사육팀장
김정호 진료사육팀장

아픈 동물을 주로 다루면서 평소 긴장으로 굳어진 내 표정도 사진속에서는 밝아보였다. 긴장하면 지고 설레이면 이긴다고 했던가. 앞으로도 선한 사람들과 설레이는 행사로 일상 속 긴장을 푸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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