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풍경
초겨울 풍경
  • 중부매일
  • 승인 2020.12.1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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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이난영 수필가
초겨울 풍경 문경새재 / 황익상 작가 제공
초겨울 풍경 문경새재 / 황익상 작가 제공

퇴직 후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지인이 카톡으로 보내온 단풍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었다. 신기롭다 못해 경이로운 영월 동강, 인제 자작나무 숲, 영동 물한계곡, 문경새재, 내장산 등 전국 명승지의 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의 향연에 방싯방싯한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알베르 카뮈의 '가을은 모든 잎이 꽃으로 변하는 제2의 봄'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코로나 19로 올해는 나들이 한번 가지 못했다. 모든 행사는 취소되었고 남편과 둘만의 여행도 걱정스러워 자제했다. 카톡으로 날아온 아름다운 단풍의 향연에 엉덩이가 들썩인다. 손자들 케어 때문에 멀리는 갈 수 없어 남편과 미동산수목원으로 향했다. 안타깝게도 철이 지났다. 겨울이 가을을 밀어내고 있었다. 산 위에서 휘돌아 내려오는 바람은 매섭고 공기는 차갑다. 형형색색 곱게 물들었던 단풍은 어느새 추풍낙엽이 되어 여기저기서 나뒹굴고 있다.

잔뜩 기대했는데 훨훨 벗은 나목만 보인다. 간신히 매달려 있는 몇몇 잎새만이 겨울을 재촉하는 찬바람에 달그락거린다. 낙엽 쌓인 호젓한 길을 밟아본다. 정감 있고 운치가 있다. 단풍은 보지 못했어도 수목원이 주는 편안한 풍경에 마음이 안정되었다.

세월은 자기 나이만큼의 속도로 달려간다더니 새삼 실감이 난다. 올해는 코로나 19로 집콕만 하여 한해를 송두리째 빼앗긴 기분인데도 며칠 있으면 7학년이 된다. 기분이 묘하다. 일흔이란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진다. 언제 하느님의 부름을 받을지 모르지만, 몸도 마음도 건강하였으면 싶다.

겨울로 가는 길목에 접어드니 40년 전에 수를 놓아 만든 액자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초겨울 풍경이나 호수를 끼고 있어 운치가 있다. 잿빛 하늘에 겨울을 재촉하듯 앙상한 가지만 남은 회갈색 나무만 있는데도 역동감과 생동감이 넘쳤다. 서양자수인데도 유화 같은 분위기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첫눈에 반해 꼬박 일 년을 밤잠 설쳐가며 수를 놓았다. 노력한 만큼 기쁨이 있을 줄 알았는데 섬세함과 세련미가 돋보이는 동양자수와 다르게 허술해 보였다. 층층시하에서 퇴근 후 잠자는 시간을 줄여 한땀 한땀 정성 들인 공이 무색했다.

초겨울 풍경 영월 동강 / 황익상 작가 제공
초겨울 풍경 영월 동강 / 황익상 작가 제공

복숭아꽃이나 목련처럼 화사하거나 우아하진 않아도 위엄이 있어 보였는데 스산하다. 나뭇잎 떨어진 앙상한 가지가 찬바람에 떨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낯설어 보였다. 그런 데다 TV에서 풍수 인테리어 전문가의 방송을 보고 더욱 난감했다. 집안에는 운의 흐름을 바꾸는 풍수 인테리어가 좋단다. 금전 운을 높여준다는 해바라기, 재물과 행운이 들어온다는 사과 그림. 재물과 명예를 상징하는 모란꽃 그림 등 많은 그림이 나오는데 내가 만든 초겨울 풍경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속 끓이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유화보다 더 멋지다며 매우 흡족해했다.

초겨울 풍경 인제 자작나무 / 황익상 작가 제공
초겨울 풍경 인제 자작나무 / 황익상 작가 제공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동양화, 유화, 니들포인트로 한 액자까지 모두 버리고 왔다. 끈기와 노력의 대명사가 된 초겨울 풍경은 차마 버릴 수가 없어 가져와 배첩장 장인에게 표구를 다시 했다. 한결 멋스러워 보였다.

이난영 수필가
이난영 수필가

4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조글조글 할머니가 된 나와는 달리 기세등등 처음 그대로의 초겨울 풍경을 유지하고 있다.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이 생기를 돋우고, 은은한 향기가 느껴진다. 세월이 가져다준 선물, 여유로운 마음 때문인가. 호수에서는 물고기가 유유자적 노니는 듯하고, 산새들의 소곤거림도 들리는 듯하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평화롭다. 시나브로 초겨울 풍경은 건강과 행복을 주는 애장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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