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되는 시장 중심엔 '가격표시제'

청주 육거리전통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대학생 기자단
청주 육거리전통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대학생 기자단

[소비자학과 이상아·박지훈·백나연·손완희 기자] 충북 청주에 거주하는 직장인 A씨의 퇴근길은 오늘도 바쁘다. 야집 근처 전통시장에서 반찬거리를 구매하려는 계획 때문이다. "어머니, 고등어 한 손에 얼마에요?" 소비자와 상인의 정겨운 대화가 시장을 우렁차게 메우며 활기를 띤다. A씨처럼 시장에서 가격을 묻는 일은 일상적이다. 어느날 문득, A씨는 '시장에서 가격을 먼저 확인하고 조금 더 편리하게 구매할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요즘 시장은 주차장도 넓고 시설도 좋아서 자주 이용하지만 가격 표시가 들쭉날쭉해 불편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와 사업자 상호 간의 신뢰는 합리적인 가격표시제를 통해 구축할 수 있다. 가격표시제란 소비자에게 정확한 가격정보 제공과 업체 간 경쟁을 촉진, 도모하기 위해 사업자가 생산, 판매하는 물품에 대해 가격을 표시하도록 하는 제도다. 가격표시제는 판매가격표시제와 단위가격표시제로 나뉜다.

청주의 한 시장 내 정육 매장에서 시행하고 있는 가격표시제. /대학생 기자단
청주의 한 시장 내 정육 매장에서 시행하고 있는 가격표시제. /대학생 기자단

판매가격표시제란 최종 판매업자가 실제 판매가격을 결정하고 표시하는 것으로, 일반 소비자에게 실제로 판매하는 상품의 가격을 표시하는 제도다.

판매가격표시 의무자는 시장 내 소매점포 중 매장면적이 33m2 이상인 소매점포라면 해당이 된다. 단위가격표시제는 상품의 가격을 일정 단위로 환산한 가격으로 통일해 표시하는 제도다. 단위가격 표시 의무자는 대형점, 백화점, 쇼핑센터, 기타 대규모 점포의 소매점포를 운영하는 판매업자로서 83개의 품목의 단위가격을 표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청주지역의 소비자들은 가격표시제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최근 청주시민 5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결과, '최근 한 달 내에 전통시장을 이용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5.2%가 '이용 경험이 없다'고 답했다. 나머지 응답자의 29.3%는 '1~2회 이용한다', 12.1%는 '3~4회 이용한다', 3.4%는 '5~6회 이용한다'고 조사됐다.

가격표시제에 대한 인식을 묻는 질문에는 '알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62.1%, '모르고 있다'는 37.9%로 집계됐다. 가격표시제의 이용 의도를 묻는 질문에는 '그렇다'가 46.6%, '보통이다'가 27.6%였다.

가격표시제가 시행되는 시장을 이용하고 싶지 않은 이유로는 '이미 대형마트에 시행이 잘 돼 있어서', '가격표시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라는 응답이 각각 12.1%, 10.3%로 조사됐다.

가격표시제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청주지역 소비자 10명 중 6명은 가격표시제를 알고 있었다. 이미 대형마트에 시행이 잘 돼 있기 때문에 이용하고 싶지 않다고 응답한 일부 소비자들조차 가격표시제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청주의 한 시장 내 정육 매장에서 시행하고 있는 가격표시제. /대학생 기자단
청주의 한 시장 내 정육 매장에서 시행하고 있는 가격표시제. /대학생 기자단

취재인이 지난 11월 16일 오후 2시부터 오후 6시까지 4시간 동안 2곳의 시장에 대한 가격표시제 시행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청주 A시장은 대부분의 점포에서 전반적으로 가격표시제를 잘 이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취급하는 물품의 가격 변동이 잦은 매장에서는 가격표시제를 실시하기가 다소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나왔다.

구체적으로 A시장 내 취급물품별로 가격표시제 시행 여부를 살펴보니, 수산의 경우 30%의 점포가 가격표시제를 도입했으나 타 품목에 비해서는 이행율이 낮았다. 과일 및 채소는 75%, 잡곡 및 먹거리는 80%, 정육은 100%의 비율로 가격표시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반면 B시장에서는 점포 대부분이 가격표시제를 시행하지 않았다. B시장의 수산매장에서는 가격표시제를 시행하는 점포가 없었다.

과일 및 채소는 21%, 잡곡 및 먹거리는 24%, 정육은 75%의 비율로 가격표시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B시장에서는 대다수의 소비자들이 가격을 구두로 확인하고 물건을 구매하는 양상을 보였다.

두 시장을 비교한 결과, 시장 특성에 따라 가격표시제 이행률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도 가격표시제 시행 여부에 따라 달라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통해 발견한 개선점을 제시해보면 가격표시제를 시행하는 점포의 경우 시인성을 높일 필요성이 대두됐다. 글씨 크기가 작거나 회이트보드로 가격을 표시한 탓에 글자가 일부 지워져 소비자들이 제대로 가격을 확인할 수 없었다.

구조물에 가려져 매장에서 공지한 가격이 보이지 않는 사례도 목격됐다.

이처럼 가격표시제를 시행하면서도 효율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까닭은 상인들의 평균 연령이 고령이라는 점이다. 조사한 시장 상인의 평균 연령이 66세에 달해 수시로 변동하는 가격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이다.

점포별로 거래업체가 상이한 탓에 이해관계 충돌이 염려된다는 상인들의 목소리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이런 걸림돌이 있는 상황에서도 상인들은 가격표시제가 시장 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소비자의 알권리를 충족하고, 소비자와 상인 간 두터운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청주의 한 시장 내 정육 매장에서 시행하고 있는 가격표시제. /대학생 기자단
청주의 한 시장 내 정육 매장에서 시행하고 있는 가격표시제. /대학생 기자단

시장에서 27년 간 정육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정육에서는 '쇠고기 이력추적제'의 도입에 따라 단위가격 표시가 의무적으로 시행됐는데, 관련 제도가 없던 시절에는 가격표시가 잘 지켜지지 않았지만 가격표시제가 시행된 후로 소비자들에게 믿고 구매할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돼 정책의 효과를 실감했다"며 "가격표시제 시행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가격표시제는 시장 대다수 점포에 적용되는 의무사항이 아니다. 그럼에도 '잘'되는 시장의 중심에는 '가격표시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비자의 알권리 충족과 더불어 소비자와 상인 간 두터운 신뢰를 구축하는 출발선은 올바른 가격표시제라는 것이다.

소비자학과 이상아·박지훈·백나연·손완희 기자
소비자학과 이상아·박지훈·백나연·손완희 기자

가격표시제의 현주소는 정책의 한계로 권고사항에 그치고 있다. 가격표시제가 활성화되고, 시장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선 상인의 의식을 깨우고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고 필요성이 공유되는 장(場)을 마련해야 한다.
 

가격표시제 인식 관련 설문조사 방식

청주에 거주하는 남성 31명과 여성 27명 등 총 58명을 대상으로 지난 11월 5일부터 11월 12일까지 질문지 설문조사 방식을 택했다. 응답자는 만 19~29세가 69%로 가장 많았으며, 40대, 30대, 50대, 60세 이상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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