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생활고·한파와 싸우는 '노인들의 겨울나기'

김길자 어르신이 차갑게 식은 보리차를 마시고 있다. / 김정미

[중부매일 김정미 기자] 새해 첫 대설주의보와 한파경보가 발효된 다음날. 대전은 온종일 영하권에 머물렀다. 최저기온이 -19도까지 내려갔던 지난 7일, 대전 쪽방촌의 찬 공기 사이로 맵고 싸한 연탄가스 냄새가 번졌다.

지난해 4월, 정부와 대전시가 대전 쪽방촌 정비방안을 발표하면서 침체됐던 쪽방촌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개발 기대감 때문이다. 시는 쪽방촌 주민들을 위해 임대주택 250호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공급 대상엔 세입자도 포함됐다. 기대감에 들뜰 법도 한데 쪽방촌 주민들은 희망을 품을 여유조차 없어보였다.

"개발 소식을 들었지만 걱정이야. 딴 데 이사갈라면 갈 데도 마땅치 않고. 해준다고는 하는데 해줄라나 모르지. 나는 여기 내 집이 아니고 세거든. 전세."

오래된 흙집의 천장은 해를 거듭할수록 낮아지고 있다. / 김정미

대전 쪽방촌 초입에 사는 김길자(80) 어르신은 새 집을 준다는 말이 듣고도 믿기지 않는다. 충북 옥천에서 이주한 지 올해로 20년도 더 됐지만 살림은 달라진 것도 나아진 것도 없다.

"여기 살면서 우리 아저씨만 저 세상으로 갔어. 사남매는 사방으로 흩어졌고. 돈을 못 벌어 많이 가르치덜 못했어. 나가서 겨우 밥 먹고 사는데 도와달란 소릴 할 수가 있나. 부모가 해준 게 있어야지. 노령연금 나오는 걸로 그냥 저냥 살어."

무릎이 아프지만 퉁퉁 부은 오른쪽 다리로는 수술도 할 수 없다. / 김정미

좁은 방을 둘러싸고 약봉지가 널려 있다. 턱이 있는 부엌은 퉁퉁 부은 불편한 다리로는 이용할 수도 없다. 휴대용 가스버너에 의지해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이웃에 수급자가 다 못 먹고 남은 쌀을 싸게 팔면 그걸 사다가 먹어. 기름값 걱정에 보일러는 늘 '외출'에 맞추고 전기장판도 밥 먹을 때나 켜놔. 죽지 못해 살지 뭐. 몸 안 아픈 게 소원이여."

 불편한 다리로는 턱진 부엌을 이용할 수 없어 겨울엔 휴대용 가스버너로 끼니를 준비한다. / 김정미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17년 전 수원에서 대전으로 정착한 김홍기(76) 어르신의 집은 한기로 꽁꽁 얼어붙었다. 벌써 열흘 째 수도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몸을 굽히고 가파른 계산을 올라가야 다다를 수 있는 3층의 비좁은 공간. 1층 집주인이 병원에 입원하면서 3년 동안 보일러를 틀지 못하고 있다.

 20년 넘에 살아온 쪽방 생활에도 봄이 찾아오려나. 김길자 어르신은 새집을 준다는 말이 듣고도 믿지기 않는다. / 김정미

겨우 찬바람만 막을 수 있는 방안에선 더운 입김만 하얗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월세 15만원을 내고 나면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30여만원 남짓. 전기장판에 의지해 겨울을 나고 있지만 특별히 추운 날이 아니면 '취침' 모드를 바꾼 적이 없다.

"생계급여랑 노령연금을 같이 안 주잖어. 쪼개서 쪼개서 밥은 먹고 사는겨. 허드렛물은 이웃에 가서 떠다 쓰고 밥 먹을 물은 사다가 먹어. 물이나 시원하게 나왔으면 좋겠어."

 열흘 째 물이 나오지 않아 먹을 물을 사러 나서는 김홍기 어르신. / 김정미

김홍기 어르신의 새해 소원은 "아프지 않고 빨리 죽는 것"이다. 우풍이 센 방안은 냉장고가 따로 없을 정도다. 온기라곤 느낄 수 없는 방바닥은 냉골이었다. 십년 넘게 살아도 벗어나지 못한 쪽방 생활.

새집을 준다고 하니 들뜬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얼마 전에도 몇 몇 사람들이 서류 쪼가리 들고 도장을 찍으라고 돌아댕기더라고. 심상치 않아서 나는 모른다고 했어."

대전 동구 대전역 인근. 지난해 말 쪽방촌 사람들에게 이른 봄소식이 들렸다. 공공주택에 임시 이주공간까지 마련해 준다는 데 세입자들은 당장 오늘이 힘겹다.

짝이 맞지 않는 장갑을 끼고 마실 물을 사러 나서는 김홍기 어르신. / 김정미

쪽방촌 거주자 168명. 세입자 141명은 꿈꿀 여유도 없다. 연일 한파가 계속되고 있는 새해 1월. 비좁은 공간의 보일러는 언제나 '외출', 전기장판은 '취침'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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