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사람] 김정호 청주랜드 진료사육팀장

새해 첫날부터 눈이 왔다. 산에 둘러 쌓여있는 인적드문 동물원이라 새소리, 바람소리외에는 동물들에게 줄 야채를 써는 사육사의 칼도마 소리가 유일하다. 눈이 오면 심심한 동물원 동물들도 눈구경을 한다. 흰색눈이라 색을 못보는 동물들의 불편함은 없다. 특히 겨울철 살과 털이 두터운 토종동물들은 야외 방사장에 나와 내리는 눈을 수염의 촉각으로 예민하게 즐기는 표정이다. 작년에 농장에서 구조된 어린곰들은 신기한 눈송이를 빨리 만나려고 나무위에 올라가 있고 반복에 실증이 잘나는 스라소니는 눈송이 갯수를 세다가 새로울게 없다는 표정이다.

따뜻한 지방에서 온 동물들은 한국의 매서운 겨울 추위를 견딜 수 없어 실내에서만 지내고 있다. 넓지 않은 실내공간이라 답답할 것이다.

새해가 되면서 광주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너구리가 왔다. 미아가 된 새끼를 시민의 신고로 센터에 들어왔고 너무 어려 사람이 젖병을 물려 키운 너구리다. 너구리는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을만큼 길들여져 결국 동물원으로 오게 된 것이다. 사육사들은 너구리를 위해 나무상자로 만든 굴을 만들어주었다. 토종 야생동물이라 별도의 난방없이 굴하나면 겨울을 날 수 있다. 너구리를 데려온 수의사는 너구리가 새끼때부터 먹던 우유량, 체중증가량, 진료기록 등을 꼼꼼히 기록한 두툼한 일지를 건네 주었다. 일지의 두께만한 책임감이 든다.

얼마 전 충북야생동물구조센터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다 미아로 구조된 새끼 오소리가 너무 길들여져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우리는 다시 오소리를 맞을 준비를 할 것이다. 아마도 광주에서 온 너구리 바로옆 사육장이 오소리의 보금자리가 될 것이다. 봄이 되고 동물원이 재개장하면 너구리와 오소리는 시민들에게 야생동물이 미아가 된 원인과 행동요령을 배우는 교육동물이 될 것이다. 단어로는 너무나 익숙한 너구리와 오소리를 실제로는 잘 알지 못하고 그러는 사이 우리 주변의 생명들이 위험해지고 있다는것에 조금 미안해 할 것이다. 미안함을 보는 것은 미안한 일이지만 작은 변화라도 있다면 할만한 일이다.

너구리와 오소리외에도 동물원에는 구조한 동물들이 늘어간다. 농장에서 웅담채취용 길러졌던 사육곰들, 사람이 놓은 덫에 걸려 다리가 잘리거나 어미가 죽어 미아가 된 삵들, 부리 기형으로 아사 직전에 발견된 독수리, 유리창 충돌로 눈을 잃어버린 말똥가리 등이다.

오래 전 동물원에 있던 코요테가 심한 다리부상으로 절단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상처가 아물때까지 한달정도 소독하는 과정에서 친해진 느낌마져 들었다. 그후 코요테는 살던 전시장으로 돌아갔다. 코요테가 움직일때는 세다리만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물론 밥도 잘먹고 건강했다. 비로서 멈추었을 때 보이는 다리의 부재에 관람객들은 안타까와했고 일부는 불편해 했다. 결국 코요테는 전시장 뒤편 좁은 격리장소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이젠 아련하지만 나에겐 형이 하나 있었다. 형은 나보다 2년 먼저 초등학교에 들어갔지만 내가 4학년 일때도 여전히 4학년이었다. 4학년에만 특수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학교 형들이 우리 형을 바보라고 놀렸다. 그 당시 나의 소망은 빨리 6학년이 되서 학교에서 우리 형을 놀리는 못된 형들을 훔씬 두들겨 패는 것이었다. 그 무렵 형은 실종됐고, 다시는 찾지 못했다. 내 소망이 이룰 일도 없었다.

그 후 우연히 노란버스를 기다리던 학생들이 형을 닮아 있었고, 형이 다운중후군이라는 것을 알았다. 충북 청주에 살면서도 형을 닮은 학생들은 있었다. 통학이 힘든 학생들이 노란 버스를 타고 멀리 교외에 있는 학교에 다녔다. 마음 다친 날이면 오토바이를 몰아 교외에 있는 그 학교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오고는 했다.

얼마 전 동물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 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가 볼 생각이다.

김정호 청주랜드 진료사육팀장
김정호 청주랜드 진료사육팀장

학교가 도심으로 옮겨와 노란버스는 이제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야생으로 갈 수 없는 야생동물들은 올 한해도 동물원에서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아낼 것이다. 그들이 구조돼 살아가는 이야기를 동물원에 온 아이들은 보고 듣게 될 것이고 그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선 우리 형은 더 이상 바보가 아닐 것이다. 새해 나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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