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음수현 청주시립도서관 사서

지난 한 해, 이 책 저 책 마음 가는 책을 골라서 온라인 장바구니에 쏙쏙 담기도 하고, 아이들 책을 사러 서점에 갔다가 내 책을 사기도 했다. 그래서 현관 입구 옆 붙박이장에 책이 가득하다. 나를 생각하며 직접 골라 준 지인의 선물 책, 읽고 싶어 모은 책, 독서모임을 통해 구입한 책, 읽어보고 소장용으로 보관한 책들이 빼곡히 쌓여 있다. 책이 늘어나면서 사서의 책장이라고 믿기 어렵게 정리가 되지 않아 뒤죽박죽 얽혀있는 모양새가 한숨 날 때도 있다. 그러나 보물상자에서 보석을 찾듯 눈으로 스캔하며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책장을 보니 한 해의 흐름과 나의 관심사가 한눈에 보이는 듯하다.

개인의 서재에 취향이 반영되었다면 2020년 도서출판계는 어땠을까? 코로나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전반적인 도서 판매량이 증가하였고, 코로나와 관련된 책이 많이 출간되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독자들의 관심도가 반영된 현상일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재테크나 부와 관련된 책에도 관심이 쏟아졌다. 또 요리책, 학습서, 문학·소설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졌고 젊은 작가들의 활발한 활동도 눈에 띈 한 해였다. 해외에서는 아동문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한 그림책 작가 백희나와 번역상 2관왕에 오른 시인 김이듬의 수상 소식도 반가웠다.

특히 20·30대의 신인 여성작가들의 강세가 눈에 띄었다. 평소 SF 소설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책의 서명이 궁금증을 자아내서 읽게 된 책이 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93년생 김초엽 작가다. 작가는 포스텍 화학과를 졸업하고 생화학 석사 학위를 받은 이과생이다. 어릴 적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는 작가는 기발한 상상력을 무장하고 있다. 7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는 이 책은 공상과학의 틀을 가진 소설이지만 사실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상상을 글로 쓸까도 신기하지만 단편의 서명들도 참신하고 읽으면서도 뒤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흡인력이 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라는 단편에서 인간배아 조작을 통해 장애가 없는 사람들만 사는 유토피아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의문을 품게 되는 데이지를 통해 새로운 사실들을 찾아가는 여정이 담겨있다. 이 책에는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라는 글이 있다. 작가는 특정한 것이 아름답기만 하거나 슬픈 것이 아니라 슬프면서 아름다울 수 있고, 불행하면서 행복할 수 있는 다면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참 공감이 간다. 세계도 그렇고, 개인의 삶도 그렇게 하나로 계속 가는 건 없는거지라는 생각이 든다.

음수현 청주시립도서관 사서
음수현 청주시립도서관 사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이야기도 버려진 우주정거장에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이동선의 출발을 기다리는 안나할머니의 이야기가 나온다. 빠른 속도로 대체되어 버리는 기술과 오버랩 되면서 그 먹먹함, 안타까움이 책을 덮은 이후에도 생각나게 한다. 잠깐 우주를 여행하다가 지구로 돌아온 듯한 김초엽의 소설 다음작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80대 구운몽 책을 찾으시는 어르신부터 대세작가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을 찾는 여고생까지 도서관 주말의 풍경이다. 자신만의 취향으로 독서목록을 꾸려 새해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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